지구상 온 나라의 수 천, 수 만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세계의 공장’ 중국. 그 중에서도 중국 경제의 대명사로 불리는 화둥(華東)경제권의 중심 상하이의 하늘은 언제나 뿌옇다. 파아란 하늘은 비행기에 올라 상하이를 뒤덮고 있는 스모그 같은 ‘중국경제의 잔해물’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중국에 대기업과 동반 진출한 업체들 속에는 스스로 ‘협력업체의 그늘’을 뚫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기업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특히 일부 기업은 대기업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오히려 대기업을 의존시키는 ‘역 상생’의 방정식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난 2004년 중국 우시(無錫)에 진출했던 LS기계는 협력업체 메트로닉스 우시법인의 덕을 톡톡히 본 대표적인 역 상생 사례다. LS기계는 지난해 중대한 장애에 직면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작업장 환경, 소음, 공해 등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압식 사출기의 특성상 분진과 오염, 소음이 많았던 LS기계에게는 ‘아킬레스건’이 노출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전동식 사출기를 쓰자니 아직 국산화가 되지 않아 채산성이 안맞을 우려가 있었다. 박상길 총경리를 비롯한 LS기계 관계자들은 애가 탔다. 그 때 낭보가 날아들었다. 메카트로닉스가 전동식 사출기에 필요한 핵심부품인 전동사출기용 서브모터를 국산화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즉각 메트로닉스와 전동식 사출기 개발을 위한 팀을 구성했고 올해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하기로 했다. “메트로닉스가 협력업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오히려 고마워하는 처지입니다. 수입대체는 물론, 비용절감까지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왔으니까요.” 박 총경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사실 메트로닉스는 LS기계에게 ‘대타’에 불과했다. 원래는 다른 협력업체가 동반 진출하게 돼 있었지만 현지 투자가 미뤄지는 바람에 그 빈 자리를 이 회사가 채운 것이다. 야구 경기로 치자면 ‘대타’를 투입했더니 ‘만루홈런’을 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메트로닉스를 ‘대타’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LS기계가 보유하지 못한 전문 기술력으로 중국 대륙에 돌풍을 몰고 올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LS기계 우시법인에서 자동차로 약 10여분 거리에 있는 메트로닉스의 송일희 총경리를 찾아갔다. “우리의 목적은 중국의 사출기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지 LS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LS는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여러 기업 중 한 곳일 뿐입니다.” 송사장은 이 회사는 삼성전자에 반도체 컨트롤러를 납품하고 있으며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과도 조만간 약 1만2,000대의 소형정밀모터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귀뜸해 줬다. 송사장은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에 비해 350% 이상 증가할 것”이라며 “이제는 중국시장에서 당당히 ‘주전선수’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징(南京)에서는 대기업이 목을 메고 매달리는 협력업체도 찾을 수 있었다. 난징새한몰드가 바로 그 주인공. 새한몰드는 자동차 타이어용 금형을 만드는 업체로 금호타이어 난징법인을 따라 동반 진출했지만 지금은 자생력을 갖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난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현재 이 기업이 없으면 신제품 생산은 완전히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금호의 모든 타이어 금형을 이 업체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한이 이 회사에 목을 매는 곳은 아니다. 미쉐린ㆍ굿이어 등 세계적인 기업까지 이 회사의 금형이 들어가지 않는 타이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금호타이어의 김명환 부장은 “다른 업체에도 주문을 해 보았지만 이 회사만큼 하는 곳은 없었다”며 “이 회사에서 물량이 모자란다고 하면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며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기업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다가 사업다각화와 매출 다변화에 성공해 지금은 ‘마이웨이’를 외치는 중소기업도 있다. 쑤저우(蘇州) 우쟝(吳江)에 위치한 SKC 신소재는 초기 삼성전자와 LG전자만을 바라보고 중국에 따라왔던 전형적인 ‘대기업 바라기’였지만 지금은 자체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해 현재는 한국과 외국기업의 비중이 50:50으로 균형을 맞춘 상태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중국시장에서 자체 활로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 정부가 ▦통합법인세 등 외국기업에 대한 혜택 축소 ▦최저임금 지속 인상 ▦외자기업에 대한 공회설립 요구 확대 ▦중국 노동자에 대한 권익 보호 강화 ▦환경규제 강화 등을 취하는 등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상호 협조와 기업의 체질 개선이 필수 과제로 부각하고 있다.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의 박한진 팀장은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 하나만 믿고 중국에 왔다가는 큰 코 다친다”며 “이들도 내수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때 반드시 ‘법대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팀장은 또 “중국의 유통구조는 중국인 자체도 모를만큼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유통업체와 동반 공략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협력업체 생산성 지원 사례
현대모비스 슬로바키아 법인 직원 교육·관리기법 전수
현대차 인도 법인선 '경영 컨설팅' 제공도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스라바로부터 북동쪽 203㎞나 떨어진 질리나 기아타운에 자리잡은 현대모비스 모듈공장. 이곳에서 일하는 현장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보안카드를 겸한 신분증을 목에 걸고 다닌다. 언뜻 보면 일반 신분증과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지만 바로 여기에 현대모비스가 내세우는 경쟁력의 비밀이 담겨 있다. 바로 신분증 뒷면에는 현지인 교육관리 프로그램의 결정체인 교육카드(Education Card)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교육카드에는 해당 직원의 교육 이력과 업무 숙련도 등이 1등급부터 5등급까지 꼼꼼하게 표시돼 있다. 회사 측에선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어 직원들을 평가했다. 공장 관리자나 주재원들이 카드만 보면 현장 직원의 업무능력을 파악해 그에 맞는 업무를 지시하고 라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김정수 모비스슬로바키아법인장은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고안한 교육카드가 750명 현지 채용인의 경쟁의식을 유발해 근로능력을 단기간에 급상승시키는 효과를 거뒀다"며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들의 충성심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가 도입한 교육카드의 효과가 널리 전해지면서 현지에 동반진출해 있는 협력업체들도 앞다퉈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현대모비스 역시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신들의 교육이력관리 시스템을 기꺼이 전수하는 새로운 상생모델을 만들고 있다. 남종우 세원ECS 슬로바키아법인 과장은 "현지 인력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섬유산업에 종사하던 인근 주민들이어서 차부품 라인에 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카드를 이용한 새로운 교육관리 방식을 도입한 뒤 근로자들의 업무능력과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교육기법 전수부터인력 관리까지 세세하게 챙기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품질이나 생산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대기업은 부품공급의 체계화와 대형화를 이뤄 서로 윈ㆍ윈(winㆍwin)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현대모비스는 해외에 동반진출한 협력업체 부품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시험센터를 개방하기도 했다. 상하이에 자리한 기술시험센터에서는 지난해 진행된 8,500건의 시험실적 중 절반 가량이 협력업체 생산품에 대한 시험으로 채워질 정도다.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의 협력업체인 한일리어는 현대차의 생산노하우를 전수받는 '경영컨설팅'을 통해 제품 경쟁력을 급신장시킨 케이스. 자동차시트 생산업체인 한일리어는 지난 96년 현대차와 함께 인도에 동반 진출한 기업으로, 모기업의 경영컨설팅 덕에 지난해 싱글PPM(Part Per Million)을 달성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생산제품 100만개 중 불량품을 10개 이내로 줄인 것이다. 싱글PPM을 달성하기까지 한일리어는 매주 한번씩 법인장을 비롯해 공장장과 라인 근로자들은 현대차 납품부서 직원들과의 미팅을 통해 불량품 발생원인과 대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한일리어의 올해 목표는 '0 PPM'. 100만개의 제품을 생산하는 동안 단 한 개의 불량품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일리어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만의 독자적인 힘으로는 단기간에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기 마련"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글로벌 상생의 의지를 갖고 뛴다면 그 위력은 만만치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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