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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SectionName();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 별세 섬유산업 '큰별'… 中庸 앞세워 63년간 기업활동 이재용기자 jylee@sed.co.kr 김윤 삼양사 대표이사 회장이 24일 서울 아산병원 빈소에서 고 김상홍 명예회장의 영전에 초를 밝히고 있다. 이호재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지난 23일 별세한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앞세운 63년간의 기업활동을 통해 장수기업 수성에 성공한 대표적인 2세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43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상과, 1945년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한 고인은 1947년 삼양사에 입사해 선친인 창업자 고(故) 수당 김연수 회장을 모시고 현재 삼양그룹의 기틀을 마련했다. 1956년에는 만 33세의 젊은 나이로 삼양사 사장에 취임해 선친으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가 온 국민의 화두였던 1950년대 제당업에 진출해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을 생산하며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또 '입는 문제'가 부상한 1960년대에는 전주에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하며 화학섬유사업을 제당사업과 함께 회사의 양대 성장 축으로 키웠다. 이어 1980년대에는 전분당 전문기업인 삼양제넥스를 비롯, 고순도 테레프탈레이트(TPA)를 생산하는 삼남석유화학, 폴리카보네이트 제조업체 삼양화성 등을 설립했다. 이밖에 사료, 기계, 제분업, 정보기술(IT)로 사업영역을 넓혀 그룹의 새 면모를 다졌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내 인생의 대부분은 삼양사와 함께해왔다. 젊은 날부터 삼양사 사람이었고 회사 일을 빼놓고서는 다른 생활이 없는 듯싶을 만큼 생각된다"고 회상할 정도로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최근까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회사로 출퇴근했으며 특히 김상하 그룹 회장과 함께 삼양그룹을 키워온 형제애는 재계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이 걸어온 인생은 한마디로 '중용지도(中庸之道)'로 표현할 수 있다. 과욕하지 않는 중용의 자세는 삼양그룹이 격동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온 근간이 됐다. 이런 김 명예회장의 경영능력이 돋보였던 것은 IMF 외환위기 때였다. 삼양그룹은 IMF 위기 발생 전부터 경쟁력 없는 사업을 철수시키고 내실을 기함으로써 큰 어려움 없이 위기를 벗어난 대표적인 기업으로 부각됐다. 김 명예회장은 장학재단인 양영재단과 수당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하며 인재육성에도 매진해왔다. 양영재단과 수당재단은 지금까지 2만1,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420여명의 대학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해왔으며 수당재단에서는 '수당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고인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금탑산업훈장과 한국의 경영자상,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이날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임창욱 대상홀딩스 회장 등이 조문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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