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김인영 편집국 총괄부국장 ◇ 참석자- 김용환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최공필 우리금융지주 전무 <이상 가나다 순> “뉴욕 월가의 금융위기는 오히려 국내 금융산업에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투자은행(IB) 업무 역량을 키워 자본산업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국제금융시장의 심장부에서 발원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이 우리 자본시장을 적극 육성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서울경제신문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앞으로 세계금융, 나아가 세계경제가 어떻게 변모할지를 점검하기 위해 ‘새 판 짜는 세계금융질서’라는 시리즈 기사를 연재했다.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갖고 금융위기의 원인, 세계경제 및 금융 전망, 우리의 과제 등을 살펴봤다. 참석자들은 “작금의 외화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실물경제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담회에는 김용환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최공필 우리금융지주 전무가 참석했고, 김인영 본지 총괄부국장이 사회를 봤다. ▦사회=현재 국내 금융시장 상황은 과거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위기의 근원인 미국 금융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해주시지요. ▦김용환 상임위원=미국의 금융위기는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과다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유동성이 주택 부문으로 옮겨갔다가 거품이 터지면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또 대형 IB들이 과도한 레버리지(차입)를 통해 파생상품을 운영한 것도 원인입니다. 리먼브러더스는 전통적인 IB 업무보다 부동산 관련 파생상품에 집중 투자한 결과 거기에서 나오는 손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금융감독 업무가 여러 기관으로 분산돼 있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감독의 사각지대가 있던 것도 한 원인입니다. ▦신인석 교수=금융위기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먼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누군가 레버리지를 많이 일으킵니다. 그 후 한동안 경제의 특정 영역으로 유동성이 계속 공급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보통은 부동산으로 많이 가는데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규제감독의 부재나 방치입니다. 미국 금융위기도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습니다. 과거에는 상업은행을 매개로 이 같은 상황이 진행된 데 반해 이번에는 IB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게 차이입니다. ▦최공필 전무=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적절한 감독이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파생상품의 리스크나 가격 산정에 대한 점검이 전혀 없었습니다. 리스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부동산에 몇 년간 집중적으로 투자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세계화로 한 나라만의 감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로 세계경제 차원에서의 ‘금융감독의 부재’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금융위기는 국가 차원이 아닌 전세계 차원의 문제입니다. ▦사회=이번 사태로 미국의 금융주권이 무너지고 아시아나 유럽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최 전무=미국의 근본 역량을 불신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번 일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태의 책임은 미국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부은 아시아 국가들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장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데가 미국인데다 앞으로는 한층 강화되고 현재의 문제점이 보완된 IB가 나올 것입니다. 물론 시간은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헤게모니는 변하지 않습니다. ▦김 위원=이번에 보니 미국 의회에서 금융시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정부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게 돋보였습니다. 미국 금융위기 여파가 유럽으로도 번지고 있지만 유럽 쪽에서는 국가 간 공조로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발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주도권을 잡기에는 부족합니다. ▦신 교수=아시아 지역은 규제가 많아 금융주도권이 넘어올 수 없습니다. 외환이나 조세 문제에 있어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외국인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미국 금융위기로 아시아에 힘이 실리겠지만 중심은 계속 뉴욕과 런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아는 아직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전세계가 지난 1930년대 같은 규제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모를까 여전히 미국과 영국이 금융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사회=우리 시장을 돌아봅시다. 외화를 조달하기 어려워지면서 원ㆍ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차원에서 위기의 해법을 제시해주시지요. ▦신 교수=우리나라가 단기적으로 외환 문제 때문에 큰일이 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기업들도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혹시라도 급박한 상황에 외환을 공급할 수 있느냐인데 현재의 보유외환 규모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중장기적으로 다른 국가와의 공조체제를 통해 외화유동성을 확보해둬야 합니다. 오히려 국내 실물경제에 충격이 가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성장에 대한 대비책이 중요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매년 5% 내외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위시한 세계경제의 호황 때문이었습니다. 금융위기로 개별 국가들의 수요가 줄어들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최 전무=중요한 지적입니다. 지금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상황입니다. 문제는 정부의 역할입니다. 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 등으로 나눠진 컨트롤타워로는 시장에 신뢰를 주는 정책과 발언을 지속적으로 펼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외환 문제에 있어 정부 관계자가 우리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좋을 게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여론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론에 흔들리다 보니 우리 실력에 비해 위기가 너무 과대 포장됩니다. 한국은행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중앙은행들은 유동성을 최대한 공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유동성 공급 등 시장이 기대하는 것을 줘야 합니다. 틀어막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시장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 위원=IMF 외환위기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 때는 실물경제도 굉장히 어려웠고 기업의 부채비율이 300~400%를 넘을 때입니다. 지금은 기업들이나 금융기관의 체력이 좋아졌습니다. 외환위기를 한 번 겪은 탓인지 국민들이 상당히 민감히 반응하면서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금융시장 규모를 봐서는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다만 일부 은행의 경우 외화유동성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한은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산업은행ㆍ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외화조달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회=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IB 육성책을 지연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신 교수=IB 모델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IB를 하느냐 마느냐는 자본시장을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와 같은 말입니다. 상업은행이 없는 금융시스템이 없듯 IB 없는 자본시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패착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찾아서 반면교사로 삼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은 규제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우리의 규제 정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미국의 규제체계에 일부 결함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찾는 게 맞지 IB 모델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유럽처럼 IB 인력 유치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 위원=우리나라처럼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곳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본격적인 IB 업무를 해보자고 발을 떼는 수준입니다. 그래야 금융회사들도 수익원을 다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통법도 인수 및 합병(M&A) 등 본연의 IB 업무를 좀 해보자는 것입니다. 미국처럼 통제 장치가 없어서 금융위기로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특히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해외 IB 인력을 많이 데려올 필요가 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많은 전문 인력이 시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실무업무에 있어서는 선진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IB가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최 전무=두 분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도 이제는 경제성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영역을 키워야 하는데 핵심은 IB 업무에 있습니다. 미국의 실수를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는 IB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원을 통해 육성해야 합니다. 사실은 지금이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입니다. 노무라증권은 리먼의 아시아 법인만 인수했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만 산 셈입니다. IB 업무라는 게 기본적으로 사람 장사입니다. 자문서비스나 이런 것은 우리 국민의 적성에 딱 맞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일찍 IB 업무에 눈뜨게 해줘야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IB가 상업은행의 그늘 아래에 들어가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나올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과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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