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9월 11일 수천 명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납치된 두 대의 여객기가 뉴욕 맨하탄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충돌했고 그 여파로 두 건물이 모두 붕괴됐다. 무고한 국민들의 목숨을 잃은 미국인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그 덕분에 전세계는 몇몇 전쟁도 겪었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미국인들은 그 분노를 잊었을까? 올리버 스톤 감독은 신작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통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한다. 물론 스톤은 영화에서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데다가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도 채 아물기 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의도된 투명함이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그렇다. 감독은 관객을 5년 전 미국이 '일방적 피해자'였던 시간으로 돌려보내 미국인들에게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게 한다. 영화는 뉴욕의 경찰관 존 맥라글린(니콜러스 케이지)과 윌 히메노(마이클 페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4남매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인 존과 역시 두 명의 자녀를 둔 젊은 가장 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순찰에 나선 두 사람의 머리위로 거대한 비행기가 도시 상공을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간다. 그리고는 거대한 굉음을 일으키며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다. 다급하게 세계무역센터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존과 윌. 인명구조를 위해 건물에 들어가지만 구조과정에서 건물이 무너져내리고 이들은 그 잔해 속에 매몰된다. 이때부터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 속에서 생존을 위한 두 사람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영화는 이처럼 9ㆍ11을 직접 체험한 소시민의 시선으로 그날의 악몽 같던 시간을 재현한다. 또한 이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보여주는 한편으론 맥라글린과 히메노의 가족들이 남편의 생사확인 소식만을 기다리며 보낸 끔찍한 시간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한없이 가족적이며 동료에게 헌신적이고 국가에 충성하기까지 하는 이런 인물이 고통 받는 모습은 관객에게 5년 전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감독은 제3세계의 테러에 분노해 직접 구조현장에 뛰어드는 인물인 전직 해병대원 등 다양한 주변인물까지 배치해 관객의 감정선을 더욱 자극한다. 때문에 비록 영화의 표면적 정서는 '인간애'이지만 그 내면에 느껴지는 진짜 느낌은 '분노'에 가깝다. “나는 아직도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의 말처럼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아직도 미국이 그날의 상처를 전혀 잊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영화다. 아울러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해 우리에게도 씁쓸함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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