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6월10일.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애를 태우던 한화석유화학의 허원준 사장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미국의 다국적 화학업체인 이스트먼케미컬(Eastman Chemical)과 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 (LLDPE) 생산기술에 대한 공동개발 및 기술 판매계약을 체결, 세계시장에 동반 진출하는 쾌거를 일궈냈기 때문이다. 허 사장은 당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떼어낸 뒤 고부가 특화제품인 LLDPE를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낙점했고 이 같은 전략은 결국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수년간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마디로 ‘고진감래(苦盡甘來)’였다. ◇고부가 특화제품에 승부 건다=한화석유화학은 현재 폴리에틸렌ㆍPVC 등 주력사업에 집중한 결과 CA(염소 생산공정)부터 PVC까지, NCC(에틸렌 생산공정)부터 폴리에틸렌까지 이어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완벽한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 어느 화학업체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탄탄한 사업구조를 확보했다는 얘기다. 한화석유화학은 특히 범용 공정으로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와 PVC 코폴리머(copolymer)와 같은 고부가가치 특화제품을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 이후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량을 매년 큰 폭으로 늘렸다. 최근에는 와이어앤케이블(Wire&Cable) 컴파운드 생산공정도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이 가능하도록 개조하는 데 성공, 향후 고부가 특화제품의 매출비중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화석유화학의 매출액 추이를 살펴보면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그 내용면에 있어서 판매제품 구성의 질적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며 “이러한 고부가가치 특화제품의 판매량 증가는 한화석유화학의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역량만 키운다=이 회사가 이처럼 세계적 기술수준을 갖추게 된 것은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을 택한 덕택이다. 지난 98년 한화석유화학(당시 한화종합화학)은 과산화수소 생산설비와 PMMA 설비를 각각 핀란드의 케미라와 프랑스의 아토하아스에 팔았다. 이어 99년에는 바닥재 등 가화학가공제품 사업을 분리했다. 이렇게 분사한 기업이 현재의 한화종합화학이다. 비핵심사업을 과감히 떼어내 핵심사업 역량에 집중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림산업과 함께 나프타분해시설인 NCC 생산설비를 합쳐 국내 최대의 NCC업체인 여천NCC를 출범시켰다. 이로써 한화석유화학은 만성적인 나프타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 안정적인 원료수급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이 같은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4,500명이 넘던 직원 수는 현재 1,800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99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던 한화석유화학은 이후 탄탄한 수익구조를 토대로 4년 연속 흑자 행진을 구가하고 있다. ◇혁신 또 혁신=한화석유화학의 혁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 들어 고유가와 급격한 환율 하락 등 경영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회사 전부문에 보다 강도 높은 혁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생산증대ㆍ원가절감ㆍ품질개선 등 경쟁력 강화 마스터플랜 목표를 상향 조정, 전방위적인 원가절감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 지난해에도 한화석유화학은 에너지 절감을 포함한 생산증대ㆍ원가절감ㆍ품질개선 등 전부문의 경영혁신 활동을 통해 약 760억원의 이익개선 효과를 창출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적의 투자를 통한 최신설비 교체, 공정개선, 고부가 특화제품 개발, 촉매ㆍ개시제 개발 등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성장ㆍ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고강도 혁신경영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다우케미컬서 배울 점 과학적 경영시스템 도입…리스크 최소화 한화석유화학과 마찬가지로 다우케미컬도 지난 90년대 초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매출 460억달러, 종업원 4만2,000명의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우뚝 섰다. 다우케미컬은 당시 화학업계 전반의 공급과잉과 가격하락, 채산성 악화는 물론 에틸렌ㆍ스틸렌과 같은 기초화학용품 사업에 잘못 투자하는 바람에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이에 다우케미컬은 구조조정과 과학적 경영관리, 인재확보, 지식경영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단순한 제품 생산업체에서 벗어나 지식기업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또 경영진을 대폭 줄이고 불필요한 인력을 축소하는 등 비용을 30% 이상 절감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35개 대학과 네트워크를 맺고 균형 잡힌 영업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아울러 가격변동이 큰 화학업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감에만 의존하는 경영을 탈피했다. 과학적 경영시스템인 '주기최저점 계획수립'(Bottom-of-the Cycle Planning) 기법을 개발, 다음 주기의 가격최저점에 맞춘 경영계획을 수립해 리스크를 크게 줄였다. 이외에 지식경영 시스템을 완비, 자사의 핵심기술을 외부에 판매하고 있다. 라이선스 계약으로 막대한 로열티 수입까지 거둬들이고 있다. ● 한화석유화학 향후전략 신수종사업 발굴로 미래성장동력 강화
나노·바이오사업 주력…M&A 등도 적극 검토
해외영업망 대폭 확충…'월드 톱10' 진입 야심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입니다." 지난해 10월9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스피드경영을 주창하고 나섰다. 창립 53주년 기념일인 이날 김 회장은 "5년과 10년 후를 내다본 신규사업 확대와 해외진출 모색 등 다각적인 미래성장 동력 발굴에 매진해나가야 한다"며 '뉴 한화' 건설을 천명했다. 한화석유화학은 이에 앞서 일찍부터 신성장 동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김 회장의 '스피드경영'은 이 같은 한화석유화학의 '블루오션' 개척 노력을 더욱 독려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화석유화학의 미래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신수종사업을 적극 발굴, 육성해 미래의 주력업종으로 키워내는 것. 아울러 국내 1위의 역량을 토대로 아시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신기술 개발을 위해 '공장이 곧 연구소'라는 모토 아래 기술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한화석유화학은 지난 65년 설립 이후 국내 최초로 PVC와 LDPEㆍLLDPE를 생산하며 블루오션을 선점해왔다"며 "특히 80년대 들어 정밀화학산업의 기반이 되는 CA사업에 진출해 무기화학 분야 기술을 확보한 것처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석유화학이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정한 기술은 CMP Slurry수용성 수지, 절연도전볼 등. 이와 함께 나노(Nano) 소재와 바이오 관련 사업을 조기 육성하기로 했다. 정보전자소재와 초임계 나노기술을 특화한 바이오 테크놀로지 제품을 조기에 상용화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인수합병(M&A)을 통한 신규사업 진출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신사업 개척과 함께 한화석유화학의 또 다른 목표는 해외시장 공략을 통한 '월드 톱10' 진입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서남아ㆍ중남미ㆍ아프리카ㆍ중동 등 다양한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주력제품인 PVC는 이미 중동과 서남아권의 인도ㆍ파키스탄ㆍ방글라데시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며 "또 다른 주력제품인 LDPEㆍLLDPEㆍCA를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석유화학은 30년 이상 축적된 기술력으로 국내 1위을 달리고 있는 제품군들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외영업 인프라 구축이 먼저라고 보고 있다. 사실 해외영업력 분야야말로 다우케미컬ㆍ듀폰 등 글로벌 화학업체에 비해 한화석유화학이 크게 뒤지고 있는 취약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화석유화학은 중국 광저우ㆍ상하이ㆍ베이징의 현지법인과 사무소를 거점으로 중국 현지에 안정적인 영업망을 건설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아울러 인도 등에서는 현지에 영업망을 구축, 실수요자와의 직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또 미국시장과 남미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현지법인 영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영업망 확대와 함께 해외 현지에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최고 수준의 생산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생산거점의 확보를 검토 중"이라며 "이를 통해 세계 최대의 화학제품 수요시장인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정상범 팀장(산업부 차장)·이규진·이진우·김성수·김현수·김홍길·민병권·김상용기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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