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8일 잠실 롯데월드호텔. 석호익 KT 부회장이 이현순 현대ㆍ기아자동차 부회장과 만났다. 언뜻 보면 사업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이날 만남에서 두 회사는 와이브로 기반의 차량용 서비스 제휴협정을 맺었다. 오는 2012년 이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운전자들은 휴대폰을 이용해 길안내는 물론 자동차 상태 점검, 차량 제어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통신업체와 자동차 업체가 협력해 텔레매틱스라는 새로운 사업을 탄생시킨 것이다. KT와 현대차의 협력 사례는 최근 디지털 융합기술 발전이 산업 지형도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하며 유무선 통신이 하나로 통합되고 서로 다른 업종 간에도 제휴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기존의 산업ㆍ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KT는 최근 통신 컨버전스(융합) 사업을 강화하면서 현대차에 이어 삼성전자 등과의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KT의 통신 인프라와 삼성전자가 가진 단말기ㆍ장비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융합상품을 내놓기 위함이다. 이런 제휴는 KT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SK텔레콤은 최근 르노삼성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휴대폰을 이용해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 '모바일 텔레매틱스'를 선보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 자동차 생산을 위한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손을 잡았다. 이처럼 이종산업 간 협력이 확산되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과 산업ㆍ업종의 장벽이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벽 붕괴는 결국 새로운 상품의 등장과 시장 확대를 초래한다. 컨버전스 시대에 유무선 통신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만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과 협력해 모바일 텔레매틱스를 만들어내고 금융산업과 융합된 모바일 금융, 에너지 산업과 결합된 스마트그리드 등의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이 결합해 모바일 TV가 등장했고 통신과 인터넷이 합쳐져 무선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영역도 생겼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KT와의 협력을 통해 조선소 내에 와이브로 망을 깔고 근로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작업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정에서도 이제 유선과 무선이 하나로 합쳐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무선 통합(FMC) 기기를 통해 기기 하나로 집에서는 인터넷전화를, 집 밖에서는 휴대폰 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새로운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계열사 간 합병에 나서는 한편 다른 업종이나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KT와 LG통신 3사 등 IT기업의 잇단 합병과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강화 방안이 잇따라 발표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술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산업과 시장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며 "이 같은 융합과 협력이라는 글로벌 추세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기업의 성쇠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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