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큐 160의 천재라는 뤄시허에 대하여 조치훈이 갖는 감정은 각별한 호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창호가 두각을 나타내던 시절에 조치훈이 이창호에게 보였던 호의를 연상시킨다. 자기 자신이 천재기사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조치훈은 천재로 꼽히는 후배들에 대하여 극진한 친밀감을 느꼈던 듯하다. 1993년 제4회 동양증권배 결승5번기에서 이창호에게 3대0으로 패한 조치훈은 시상식 자리에서 사람좋게 웃고 있었다. “어제의 천재가 오늘의 천재에게 패하고 말았군요.” 이것이 그의 준우승 소감이었다. 흑75는 마치 ‘여기에 너의 약점이 있잖니’ 하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기분으로 둔 수순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수가 패착의 누명을 쓰게 되었다. 흑75로는 먼저 참고도1의 흑1로 뻗고 보았어야 했다. 백이 2로 막으면 그때 비로소 흑3으로 붙인다. 이 코스면 백이 도리어 거북한 진행이었다. 실전은 백80 이하 86의 수순이 멋져서 흑의 고전이 역력하다. 흑77로 참고도2의 흑1에 끼우면 급박한 패가 나는데 백에게는 A로 모는 득의의 팻감이 있어서 흑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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