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엄벌주의와 필벌주의 범죄는 절멸 아닌 관리의 대상… 엄벌-필벌 사이 균형이 중요 문유석 서울중앙지법 “우리나라는 형벌이 너무 약하다. 징역 10년, 20년 정도로 엄벌해야 범죄가 없어진다.”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징역 몇 년의 엄벌에 처했다는 기사는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죠. ‘엄벌주의’는 쉽게 와 닿습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 구약성서, 고조선의 팔조금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문명의 기본 형벌이론은‘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동해(同害)보복과 엄벌주의입니다. 살인한자는 죽이고, 도둑질한 자는 팔을 자르며, 간음한 자는 거세하고, 빚 안 갚는 자는 노비로 삼는 등이죠. 엄벌을 주장하는 분들이 흔히 비교하는 곳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확실히 문명국중 가장 형벌이 엄한 나라의 하나로 손꼽 힙니다. 미국의 수감자 수는 200만명을 넘고 있습니다. 1999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수형자가 평균 8개월 형을 선고 받는데 비해 미국의 수형자는 평균 34개월형을 선고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프랑스보다 4배 더 형벌이 엄하므로 4배더안전한 국가일까요. 거꾸로, 4배 더 무거운 형벌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요소가 많은 사회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엄벌이란 공짜가 아닙니다. 교정시설을 엄청나게 증설해야 하고, 세금으로 그 많은 수감자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동시에, 수감인원 증가는 사회적으로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하기도 하죠. 그런 사회적 비용을 꼭 투입해야 할만큼 범죄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위험이 심각한 상태라면 이를 감수해야 하겠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치안 수준은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입니다. 또 징역을 하루도 받아 본 적 없는 일반 시민들이 개개인의 정의관념에 따라 생각하는 것과, 실제 형을 복역하는 사람들이 복역기간 및 그 후의 사회생활에서 받게 되는 고통 및 불이익을 감안해 판단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범죄율을 낮추는 데 효율적인 것은 엄벌보다는 오히려‘필벌주의’입니다. 아무리 엄벌을 한다고 해도 적발될 확률이 높지 않으면 범죄는 줄지 않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 충동적 범죄를 제외한 일반 범죄의 범죄율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쉽게 들 수 있는 예가 바로 ‘카파라치’입니다. 교통단속당국이 카파라치에 의한 교통위반사범 신고를 포상하게 하자 위반사례는 극적으로 급감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필벌주의’ 역시 양날의 검이라는 점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의 완벽한 통제로 인한 고통이 범죄피해로 인한 고통보다 더 클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데쓰노트’라는 만화가 큰 인기였죠? 일기장에 범죄자의 이름을 적어 넣기만 하면 그를 죽게 할 수 있는 노트로 범죄 없는 세계를 만드려는 비뚤어진 이상주의자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이야기의 기발한 상상력은, 필벌주의, 엄벌주의로 손쉽게 범죄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들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의 결말도 그렇듯이 인간사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다른 모든 위험과 마찬가지로 범죄 역시 절멸의 대상이라기보다 관리의대상인 것 같습니다. 위험을 절멸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다른 위험을 낳기에, 적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죠. ■ 이글은 본지 홈페이지(hankooki.com)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seoul.scourt.go.kr) ‘법원칼럼’을 통해서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입력시간 : 2008/01/0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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