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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인력난심화 현장을 가다] 일 조금만 힘들어도 고개 절레
입력2003-06-29 00:00:00
수정
2003.06.29 00:00:00
현상경 기자
“가구업계에만 30년을 종사했지만 요즘처럼 사람 구하기 힘든 때도 없었어요. 월급도 꽤 주고 기술도 가르쳐 준다는데도 일하겠다는 젊은이가 드물어요.”
강남구 내곡동 가구공단에 위치한 가구업체 L사장.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며 토종가구업체로는 드물게 성공을 거둔 경우다. 품질경쟁력이 있어 고가에 제품을 팔고 높은 수익도 거두지만 생산량이 적어 고심이다. 인력난 때문이다. 그는 “이제 조금만 힘든 일, 어려운 일이라고 인식되면 아예 일할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반월공단의 A염색업체. 지난달까지 17명의 외국인 근로자 중 10명이 현장을 이탈해 현재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Y사장은 “업종 자체가 사양산업이다 보니 인력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경우 일할 만하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버려 공장 돌리기가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20여만명에 대한 강제출국 시한이 8월말로 다가왔다. 반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법안`의 지난달 임시국회 통과가 무산됨으로써 불법체류자 출국 대란과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심각한 인력난이 불 보듯 하다. 정부는 당초 3월말이었던 출국시한을 5개월이나 연장해 준 만큼 다시 늦출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해결책으로 제시된 고용허가제 방안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결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소기업들의 인력난만 가중되어 심할 경우 상당수 기업들의 생산라인 가동중단까지 전망되고 있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인한 판매부진, 자금난 등과 맞물려 중소기업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청이 종업원 300인 미만 893개 전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 1ㆍ4분기 인력부족률이 8.9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1년의 경우에는 3.98%에 불과하던 것이 해마다 증가세를 보여 현재는 10% 가까운 인력부족률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기실 이 같은 인력난은 어제, 오늘 발생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3D업종 기피 분위기와 대기업ㆍ중소기업간 임금 및 근무환경 격차가 심각해지면서 젊은 인력들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기를 꺼리는 현상이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우선 낮은 임금수준이 중소기업 회피의 첫째 이유로 꼽히고 있다. 중기청에 따르면 인력난의 이유로 중소기업의 28%, 근로자의 44%가 낮은 임금수준을 들었다.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K모씨는 “아무리 우수한 중소기업이라 해도 급여나 대우 수준이 대기업과 차이가 난다”며 “면접을 가 보더라도 근무분위기가 싫어 대기업을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는 중소기업식 인력 마인드와 `삶의 여가`를 중요시 하는 젊은 인력의 근무태도간 상충도 인력난의 중요 원인이다.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굴삭기 부품을 생산하는 D업체의 사장은 “최근 여직원을 뽑으려고 5명을 면접 봤다가 모두 퇴짜를 놓았다”며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안하고 몇시에 퇴근하는지, 주5일 근무하는지 등만 묻고 있어 화가 났다”고 말했다. 반면 이 업체를 지원했던 P씨의 시각은 다르다. “무조건 옛날 식으로 밤새도록 일만 하라는 식이다”며 “초과근로에 대한 보장도 없고 여가나 휴가에 대한 개념도 부족해 아예 중소기업에서는 일할 생각이 안 난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소 30여만명의 인력난이 필요한 상황에서 합법 취업자 5만명 규모도 안 되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도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법 외국인력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태.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엄청난 입국비용을 치르고 와 월급 규모에 따라 야반도주를 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제 중소기업도 값싼 노동력으로 수익을 거두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는 인건비를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상경기자 hs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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