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투자 전문가는 그의 저서에서 "폭죽같은 기업을 조심해야 한다. 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말했다. 요즘의 이레전자산업, 시큐어소프트 등 몇몇 기업을 빗댄 표현이었을까. 한 때 자기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던 일부 벤처기업들이 존폐위기 속에 휘청거리고 있다. 과당ㆍ출혈경쟁, 대주주 횡령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기업과 견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게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이라도 시장 트렌드의 변화, 경영권 변동 등 외부환경에 취약해지기 쉽다"며 "선택과 집중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인수합병(M&A) 등으로 생존을 꾀할 때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택과 집중…강한 상대는 피하고, 몰려다니지 마라= 지난 90년 5평짜리 창고에서 출발, 한때 디지털 TV분야에서 대기업의 아성을 무너뜨릴 중소업체로 평가 받던 이레전자산업. 지금 이 회사는 자본전액잠식으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단 지난해부터 중소업체의 가격 메리트가 사라져버렸다. 디지털TV원가의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LCD패널 가격이 떨어지면서 대기업 제품가격이 떨어진 데 따른 것. 대기업들은 가격이 낮아진 만큼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브랜드나 서비스 등에서 쳐지는 이레전자는 급격히 어려워졌다. 디지털TV 업계 관계자는 "패널 가격은 양날의 칼"이라며 "패널가격이 높을 때는 소비자들이 '그래도 고급 브랜드가 낫다'며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패널가격이 떨어지면 주저없이 대기업 제품을 산다"며 "중소업체의 경우 가격경쟁력을 상실하면 곧바로 제살깎기 경쟁에 들어가게 된다"고 진단했다. 1세대 보안업체로 방화벽 '수호신'을 개발했던 시큐어소프트도 지난 2001년부터 영업적자를 내다 최근 증시에서 퇴출됐다. 출혈과당 경쟁의 결과였다. 90년대 후반만해도 보안시장의 성장성이 크게 부각됐고, 실제 2001년 전후로는 업체수가 300개나 됐다. 하지만 IT경기침체로 2004년까지 시장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보안시장 규모만 봐도 작게는 3,000억원, 솔루션 유통까지 합해야 7,000억원 수준이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중복투자가 심하다 보니 어느 쪽이 뜬다고 하면 우후죽순처럼 업체가 생겼다. 반면 시장의 성장은 지지 부진했으니 결국 저가 덤핑 수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당연히 기술이나 인력에 투자할 여력은 없어진다. 특히 보안업계에는 경영역량이 부족한 엔지이너 출신 사장들이 많았다. 시장 예측에 서툴렀고, 이는 방만한 경영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자금 횡령 등 모럴 해저드도 부실키워= 현대아이티(옛 현대이미지퀘스트)는 M&A로 낭패를 본 케이스. 하이닉스반도체에서 모니터사업부문을 분사,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다져왔던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최대주주였던 하이닉스가 NHD홀딩스란 투자펀드회사에 지분을 매각한 후 난관에 처했다. 이 투자펀드회사는 현대아이티의 사업과는 무관한 바이오 업체지분 매입에 나서는가 하면 회사의 인감을 사용해 회사자금 274억원을 편법으로 유용하기도 했다. 시큐어소프트나 엠텍반도체 등도 최대주주가 각각 194억원, 114억원의 횡령을 저질러 대규모 손실을 불렀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주력사업이 부진해지면 경영권의 잦은 손바뀜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며 "이 과정에서 유상증자 등을 통한 횡령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생기업일수록 내부 경영 감시제도와 사외이사 제도가 허울뿐인 곳이 많다"며 "특히 M&A의 경우 인수자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선행되지 않으면 부실매각으로 되돌리기 힘든 지경으로 내몰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제품 차별화, 업체간 제휴 등으로 경쟁력 키워야= 중소디지털TV업체의 고전 속에 지난해 110억원의 영업 이익을 낸 DM테크놀로지는 벤처의 생존에 관한 시사점을 준다. DM테크는 내수를 포기하고 브랜드 의존이 덜한 해외시장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주력제품도 사업부가 분리된 대형사들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틈새 품목인 복합LCD TV로 밀었다. 특히 저마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비중을 축소시키고 자가브랜드 비중을 90%가까이 끌어올려 왔다. 보안업계의 살길도 기업간 제휴나 M&A 등에서 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자금력 부족 등으로 기술 개발 여력이 딸려 뛰어난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춘 국내 시장을 이용도 못해보고 고사하고 있다"며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도 기술의 통합 추세 등을 감안해 다른 업체와 손잡지 않으면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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