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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금융시장에 돈줄이 마르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국의 눈치를 보며 춤을 추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97~1998년 외환위기 때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얻어 간신히 살아났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의 현상이다.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KDB)의 리먼브러더스 인수포기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요 은행들의 채권 지급을 보증하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크게 치솟았다. 미국 최대 저축대부조합(S&L)인 워싱턴뮤추얼의 CDS 프리미엄은 이날 0.5%포인트 올라 24%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의 CDS 프리미엄 역시 0.1%포인트 올라 3.9%를 나타냈다. 유럽 은행들과 보험사들의 CDS 프리미엄도 한달 전보다 크게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리먼브러더스의 CDS 프리미엄도 0.08%포인트 올라 3.66%를 기록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후 이틀 동안 리먼브러더스의 CDS 프리미엄이 0.33%포인트 치솟았다. 이는 100만달러 채권의 지급보증을 위해서는 3만6,600달러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들이 그만큼 자금조달에 목이 말라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뉴욕 금융시장은 지난주 말부터 한국에서 흘러나간 미확인 보도로 희비가 갈렸다. 지난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결렬 소식을 전하자 리먼은 물론 금융주가 줄줄이 하락했으나 23일에는 로이터가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설을 다시 부각하면서 리먼의 주가는 한때 16%나 급등하고, 다른 금융주들도 함께 뛰면서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이날 198포인트(1.73%)나 올랐다. 25일 전 위원장의 발언이 나가면서는 리먼 주가가 무려 7% 가까이 급락했다. 뉴욕 금융가는 요즘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아시아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이 적어 상대적으로 건실하고 수년간의 무역 흑자를 바탕으로 한 국부펀드의 투자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26일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미국 메릴린치, 영국 바클레이스은행 등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국제금융시장이 이를 반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국책 모기지 기관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채권 발행에서도 통상 한국 등 아시아 투자자들이 40%를 매입하는데 최근 아시아 투자자들이 채권 매입을 꺼리는 바람에 두 기관의 부실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금융기관을 미국 금융기관 인수의 유망 카드로 꼽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리먼 지분 50%를 인수하는 데 7조~8조원의 비용이 드는데,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6조원)에 비춰보면 헐값 인수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리먼의 입장에서도 중동이나 중국계 자본에 넘어가 의회의 정치적 거부권(?)을 초래하기보다는 안보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한국계 자본을 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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