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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객 115만 4,537명.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는 영화 ‘말아톤’이 전국 관객 400만명을 넘긴 것과 비교하면 눈에도 띄지도 않는다. 그나마 10년에 걸쳐 모은 관객이라 하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멀티플렉스가 골목마다 세워지는 시대에 작은 단관 극장에서, 그것도 예술 영화만으로 이만큼의 관객을 동원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예술영화 전문 수입ㆍ배급사 백두대간이 올해로 창사 10주년을 맞는다. 지난 95년 2월 28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시작으로 지난달 18일 개봉한 ‘독일, 창백한 어머니’까지 10년간 총 69편의 예술 영화를 국내에 선보였다. 일반 관객들이 보기엔 다소 난해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흥행성만을 고려하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예술 영화 시장을 10년간 꿋꿋이 지켜온 것만으로도 백두대간은 국내 영화계의 ‘보석’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 95년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대학로 동숭씨네마텍를 개관했던 백두대간은 지난 2000년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지하에 위치한 씨네큐브 광화문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백두대간이 선보인 많은 작품들은 국내 영화 마니아들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95년 첫 배급작품인 ‘희생’이 동원한 3만명은 이 영화가 한 나라에서 동원한 가장 많은 관객 수이다. 장 뤽 고다르, 테오 앙겔로풀로스, 짐 자무쉬 등 영화학 교과서에서나 찾을 수 있는 감독들의 영화들도 백두대간을 통해 스크린에 선보였다. 직접 제작한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은 18만명의 전국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이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는 ‘원초적 장벽’의 그늘은 여전히 깊고 짙다. 그나마 흥국생명으로부터 15년간 씨네큐브의 모든 시설을 무상으로 임대받는 백두대간은 행복한 케이스. 씨네큐브와 함께 국내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자리매김해온 종로의 코아아트홀은 계속되는 운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해 간판을 내렸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입주했던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폐관 위기에 몰리는 우여곡절 끝에 종로 허리우드극장 스크린 1개를 빌려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백두대간 설립과 함께 90년대 중ㆍ후반 유행처럼 번졌던 예술영화 붐도 꺼진 지 오래다. ‘천국보다 낯선’처럼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타인의 취향’같은 유머와 해학이 돋보이는 영화들 마저 ‘규모만이 문제’가 된 극장가에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백두대간 창고에서 개봉만을 기다리는 영화만 20여편. 작품성 하나는 자신하지만 흥행이 걱정돼 먼지만 켜켜이 쌓이고 있는 형편이다. 영화사 측은 “시공을 뛰어넘는 걸작들을 비디오나 DVD가 아닌 오리지널 필름으로 대형 스크린에서 감상할 기회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영화를 사랑하는 ‘적극적 관객’을 위해 묻히기 쉬운 작품성 높은 영화들을 꾸준히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창사 10주년을 맞아 백두대간은 첫 개봉작 ‘희생’과 ‘노스텔지아’를 오는 18일 재개봉한다. ‘안개 속의 풍경’과 이란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3부작도 역시 재개봉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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