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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이공계를 살리려면
입력2002-10-21 00:00:00
수정
2002.10.21 00:00:00
최근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씨의 학력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라면 으레 박사나 대학교수 등 저명 인사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의 학력이 '학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도의 학문이 요구되는 과학부문 수상자이기에 더욱 놀랐나 보다. 그는 83년 도호쿠(東北)대 공학부 전기공학대학을 졸업한 후 교토(京都)의 정밀기기 제작회사인 시마즈(島津)제작소에 입사, 분석계측사업부 생명과학연구소의 주임으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 했다. 그러니 노벨상 발표 당시 다나카씨 스스로도 자신을 동명이인줄 알았다고 하니 일본 국민들은 그의 이력에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 후 다나카씨로부터 우리는 또 한번 놀라움을 받았다. 그는 회사가 제시한 '이사급' 자리를 거절하고 직급에 관계없이 연구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어떠했을까. 직급 승진과 함께 몸값 부풀리기에 오히려 열을 쏟지나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본은 다나카씨의 수상으로 과학부문의 노벨상 수상자가 9명으로 늘어 나는 등 과학 대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분야는 어떠한가. 취업과 돈벌이가 되는 학과만을 선호하고 이공계기피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우수한 고교 졸업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대학 수능시험 성적이 1등급인 계열별 상위 4%에 해당하는 수험생 1만3,000여명 중 이공계에 진학하는 비율은 98학년도 27.6%, 99학년도 21%, 2001학년도 19.5%로 해가 갈수록 감소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 과학의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설립한 과학고 출신자중 상당수가 의대 선택을 선호하고 있고, 주요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의 70%가 자녀의 이공계 지망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이공계 실정을 말해주고 있다.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도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전과를 서두르고 있다. 게다가 명문대 이공계 학생들은 사법시험 등에 오히려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크게 좀먹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공계 추락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들 이유들 중에서도 '돈'이 인생에 전부라는 비뚤어진 사회 현상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 단적인 예를 사법시험 응시자수에서 엿볼 수 있다. 사법시험 응시자가 올해 처음으로 3만 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질 수 있는 기회의 시험임이 분명하다. 그렇다 보니 법대생은 물론이고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시험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면서 조기퇴직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 직장인들마저도 사법시험 준비에 뛰어 들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사법시험 응시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법시험에 일단 합격만 하면 판사나 검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한평생을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다. 또한 판ㆍ검사로 재직하다 변호사 활동을 할 경우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월급쟁이들이 평생동안 벌어도 벌 수 없는 돈을 단 몇 년 만에 벌 수 있다. 그러니 우수한 사람일수록 사법시험에 메 달릴 수 밖에 없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대를 졸업하면 평생동안 의사로서 사회적 지위와 함께 부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니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자식들에게 은근히 이 같은 직업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이공계를 살리겠다고 온통 난리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과 함께 해외유학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할 모양이다. 정부는 또한 '이공계살리기운동본부'까지 발족시켜 과학기술 강국을 향한 청사진을 제시할 태세다. 그러나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아무리 좋은 처방전을 내 놓는다고 해도 과학자에 대한 처우가 먼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정책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윤종열<사회부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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