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전에서 정말로 이창호가 자기의 능력 전부를 쏟지 않은 것일까. 도전자였던 최철한은 분명히 그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창호가 이번 5번기에서 자기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더라면 무난히 방어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최철한은 국수전에서 승리하고 나서도 상대방이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저희들과는 레벨이 한참 달라요.” 이렇게 이창호 앞에서는 몸을 낮추었다. 이창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지난 18년 동안 견지해온 승부사로서의 정신적 메커니즘 속에는 ‘일부러 소홀히 한다’는 조항은 전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벌어진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단 말인가. 이창호의 속절없는 패배와 최철한의 너무도 완벽한 승리. 한국기원의 고단자들, 출입기자들, 바둑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반응은 경악이었다. 이창호 국수의 시대는 최소한 앞으로 10년은 갈 것이라고 모두들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부처의 절대 고독을 독사가 물어뜯었다’ ‘이창호가 비로소 오랜 잠을 깼다’ ‘최철한이 이창호타파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성과였다’ ‘이창호가 세계기전 이외에는 관심이 적어졌다는 증거’ 이런 식으로 신문들의 언급이 있었으나 사태의 핵심을 파헤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요컨대 아직 끝나지 않은 10번기가 일단락되고 나야 어떤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전 5번기는 국수전과는 또 다른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인데…. 지금 소개하는 기성전 제2국은 관전자들에게 너무도 큰 즐거움을 제공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탐색전 없이 강한 펀치의 교환으로 일관했다. 한국바둑사에 길이 기록될 역투보였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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