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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해외동포·주재원 수필공모 시상] 우수상 장계숙씨
입력2004-12-01 17:20:39
수정
2004.12.01 17:20:39
보고싶다! "조국, 더 많이 돌아보고 제대로 익혀둘걸"
[제2회 해외동포·주재원 수필공모 시상] 우수상 장계숙씨
보고싶다! "조국, 더 많이 돌아보고 제대로 익혀둘걸"
‘실버데일 출구(Silverdale Exit) 2km’
커다란 표지판을 보는 순간에 자동차 속도 계기판은 이미 100km를 넘기고 있었고 ‘죽을 만큼 보고 싶다’고 애절하게 노래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좁은 차 안을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략) 고향생각 나게 하는 ‘Hibiscus’, 그리고 바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로터리를 돌면 ‘히비스커스 코스트(Hibiscus Coast)’를 가리키는 두 번째 표지판을 만난다.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길이고 이미 8개월 째라 익숙하지만 볼 때마다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을 갖곤 한다. (중략)
수요일 아침마다 내가 이렇게 갈 곳 없이 서글픈 마음을 달래면서 때로 한마디 노래가사에 눈물을 찍어내며 도착하는 곳은 바로 이곳의 조용한 ‘인터미디에이트 스쿨(Intermediate Schoolㆍ중학교)’이다. 나는 이 곳 7학년(중학교 1학년)의 한국어 강사다.
(중략) ‘Hisbiscus Coast Intermediate School’은 한국어를 외국어의 하나로 채택해준 오클랜드에서 몇 안 되는 학교 중 하나다. 물론 나는 정식교사는 아니고 자원 봉사자로 일한다.
이 곳에 있는 10여명의 한국어 교사모임에서 한국을 조금이라도 알리자는 차원에서 학교로부터의 일체의 보수없이, 오히려 한국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먼 곳도 마다 않고 수업을 하게 된다. (중략) 나는 뉴질랜드에 온지 겨우 2년도 안된 신참이고, 수업은 올해가 처음이기에 매 시간이 첫 만남처럼 떨리고 긴장된다.
(중략) 게다가 오늘은 처음으로 우리의 한복을 선보이는 날이다. 지난주에 갔을 때 내가 수업하는 반의 담당 선생님이 특별히 부탁할 게 있다고 하면서 날 불렀다. 특별행사 중 하나로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는데,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춤이나 무용을 소개하고 싶다며 내가 좀 도와 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사실 뉴질랜드에는 오랫동안 마오리라는 원주민들이 살았고, 나중에 영국이 지배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전통이란 마오리 부족의 원시적인 것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국적이니 나름의 독특한 것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전에 ‘한국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를 보여줄 때도 5,000년의 긴 역사와 우리의 발명품들과 전통문화-태권도, 활쏘기, 세시풍속-를 보여주니 학생들이 감탄했던 기억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Of course, I Will.(물론 하겠습니다.)” 머리보다 앞선 마음이 먼저 대답을 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뭘 가르치고 어떻게 보여줄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비디오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몸으로 배우고 느끼는 것이었다. (중략)
고민 끝에 이곳에서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분의 광고를 본 기억이 나서 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다. (중략) 덕분에 간단한 안무도 배우고 공연에 쓰는 부채도 몇 개 빌렸다.
(중략)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철저히 한국적인 ‘태평가’를 골랐다. 흥겹고 단순한 리듬이 따라하거나 흥얼거리기에 적당한 듯 했다. 일주일의 연습과 서른이 넘은 몸으로 아름다운 한국무용의 참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로 이민 올 때 가져온 한복을 새로 다림질하고 학생들에게도 입을 기회를 주고 싶어서 딸아이 한복까지 챙겨서 길을 나섰다.
학교에 오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안내 데스크에 있는 직원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자줏빛 저고리에 녹색치마. 이건 내가 결혼할 때 장만한 최고의 한복이었고, 한국에서도 명절이나 큰 행사가 아니면 별로 꺼낼 일이 없는 옷이었다.
(중략) 아사로 만들어서 가볍기도 하지만 화려한 색깔과 흘러내리는 선마다 놓인 꽃무늬가 새삼 감탄할 만큼 예뻐보였다. 머리도 어울리게 하자는 욕심에 올려 묶었다. 거울 속에 있는 여자는 영락없이 조선시대의 한 단아한 부인의 모습이었다. (중략) 옷을 갈아입고 처음 만난 사람은 수학을 가르치는 나이든 여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Wow, so beautiful.(와. 정말 아름답습니다.)"을 연발하면서 내 주위를 맴돌았다. 저고리를 만져보고 색깔에 감탄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략) 모두들 나로 인해 한국을 생각하고 그리고 상상하는 경험을 해온 터에 오늘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실제로 보게 되니 학생들의 흥분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부채춤을 가르쳐 주기 위해 녹음해간 CD를 재생기에 넣고 줄을 세웠다. (중략) ‘가사도 잘 모르는데 과연 그들이 좋아할까?’ 그건 기우였다. 독특한 한국민요 장단이 전주로 나오면서 쿵짝짝 하는 리듬을 살리기 위해 어깨를 들썩이며 연습해간 부채춤을 선보였더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중략)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차례 춤을 보여주고 나니 학생들이 주변에 모여 궁금증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건 뭐냐, 이름이 뭐냐. (중략) 저마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신어보고 입어보고 하느라 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중략)
“Korean fan dance is so wonderful.(한국 부채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 한마디 말은 그 동안의 모든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고 내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내가 태어나고 나를 길러준 나라. 내가 어떤 이유로 조국을 떠나 살고 있더라도 내 뿌리가 내린 곳은 이 세상에 두 개가 있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중략)
늘 듣는 말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서구의 발달된 과학문명을 받아들이고 생활이 더욱 편해질 수 있는 많은 현대적인 것들을 만들고 이제는 그들보다 앞서는 기술을 이룬 것도 참으로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것을 버리고 서양의 것들이 더 좋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뉴질랜드는 관광의 천국이지만 그 저변에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원시부족이었던 마오리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관광산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굽이굽이 펼쳐진 산,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적인 독특함, 여기에 더해 참으로 소중한 조상들의 문화유산-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뒤늦은 후회를 난 요즘에 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조국의 품에 있을 때 더 많이 보고 느끼지 못한 것, 그 때는 왜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별 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지나쳤는지... ‘좀 더 많이 다니면서 눈에 익히고 제대로 보아두었다면 지금 이 나라 학생들에게 더 잘, 더 실감나게 설명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새삼스레 그 산천과 조국이 더욱 애타게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입력시간 : 2004-12-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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