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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없앤다?

서울 논현동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사옥 현관에는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다. “쏘리 빌 게이츠. 한국에서만 (MS워드를) 반값에 팔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한컴 직원들은 출근할 때마다 이 포스터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 속에 담겨있는 자부심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들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지난 98년 한컴이 외환위기와 경기침체로 경영난에 빠져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에 넘어갈 뻔 했을 때 `한글8.15`를 1만원에 구입하고 주식을 사들여 한컴을 구해낸 주역이 바로 국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컴이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이사회가 김근 대표이사를 전격 경질하고 류한웅(미국명 폴 류)씨를 새 대표로 앉히면서 사태는 촉발됐다. 해임절차의 적법성을 두고 양측이 공방을 벌이면서 문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지만, 경영권의 향방이 어떻게 되느냐가 최대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 살려낸 기업 한컴과 워드 프로세서 `한글`의 미래다. 신임 대표가 미국 시민권자이며 우리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냉소어린 보도도 있었지만, 정작 따져봐야 할 것은 `한글`에 대한 경영진의 인식이다. 류 대표는 컨설팅회사에 있던 2000년 말 `한글은 사양산업`이라는 요지의 컨설팅을 한 바 있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사외이사로 재직해온 지난 2년 동안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현 경영진과 꾸준히 공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그가 `원군`으로 영입한 배순훈 사외이사 역시 정보통신부 장관 재직 당시 `한글`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한컴이 한글을 포기할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류 대표 측은 “한글을 포기할 순 없으며 신규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한컴 직원들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시장경쟁에 의해 밀려나는 상품을 억지로 살려내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한컴과 `한글`이 갖고 있는 국민적 자존심을 고려할 때 `한글`은 한컴 경영진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다. <김문섭기자(정보통신부) cloon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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