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석(71ㆍ사진)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회장이 45년간 삶을 불살랐던 현장을 떠난다. 지난달 27일 협회장 임기를 마치면서 은퇴를 선언한 것. 국내 전문경영인 1세대를 대표하는 그는 45년간의 직장생활 중 28년을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특히 국내 중공업이 혼돈과 성장을 동시에 겪었던 지난 1980년대부터 대우중공업ㆍ한국중공업ㆍ두산중공업 등에서 CEO로 활약하면서 중공업 산업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윤 회장을 역삼동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회장실에서 만났다. "위기일수록 신뢰가 중요합니다." 윤 회장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CEO로 이름을 날린 그에게서 좀 더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했지만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재의 위기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극복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믿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 방향을 잡는 것이 바로 리더이고 리더십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이겨낼 일꾼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선 윤 회장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좀 더 도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이 1960년대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회사는 임직원 10명 남짓의 조그만 회사. 서울대 상과대학을 나왔지만 워낙 일자리가 없어 취직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그가 지원했던 회사는 단 3명의 급사를 뽑았는데 지원한 사람만 무려 360여명이었다. 윤 회장은 "젊은이들이 좀 더 도전적인 생각으로 삶에 임해야 한다"며 "요즘 직장인들은 패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직장생활 45년 동안 20년 정도를 휴가를 잊고 살았다. '일이 취미요, 일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과거에는 퇴근시간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가 맡은 일에 모든 것을 내던졌는데 요즘은 퇴근시간이 직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왜 내가 해야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절벽 앞이라도 한발을 더 내디뎠을 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45년의 직장생활. 그 중에서도 1980년 대우중공업 대표를 시작으로 CEO만 28년을 해온 그는 숱한 '신화'를 창조했다. 대우조선 CEO 시절 선박 건조 공기를 기존의 절반으로 줄여 현재 국내 조선업 경쟁력의 기반을 닦았고 대우중공업ㆍ두산중공업 CEO를 맡았을 때는 선견지명으로 무한한 성장성이 있는 담수ㆍ발전플랜트 시장에 진출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윤 회장은 42세에 처음으로 CEO가 됐던 1980년대 초 대우중공업 시절을 꼽았다. 당시 해외 기술을 도입해 굴삭기를 제조했던 대우중공업은 정부가 중공업 산업을 재편하면서 사업권을 잃었다. 6개월 이내에 굴삭기 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하면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는 연구개발 직원들을 독려하며 기술개발을 추진, 6개월 만에 기술개발에 성공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독자기술을 개발하자 가격경쟁력과 품질이 크게 높아져 당시 국내 굴삭기 시장의 94%를 차지하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가 세계적인 굴삭기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윤 회장은 "그때 독자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이후 기술직들의 임금 및 직급을 관리직보다 1.5배 많이 인정해주는 인사체계를 도입하는 등 기술개발을 집중 지원했다"고 전했다. 후회는 없었을까. 윤 회장은 "경영합리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다시 기업인으로 활동한다면 기존의 틀에 얽매인 CEO가 아닌 자유로운 사고와 비전을 가진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윤 회장은 은퇴 후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국제로타리 3650지구 총재로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낼 예정. 하지만 직업이 CEO였던 그이기에 새로운 방식의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후진국 기업들의 전문경영인이 되는 것이 그것. 그는 "후진국에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곳들이 많다"며 "나의 경험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봉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윤 회장은 소년 시절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기업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평생을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다. 하지만 그 삶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다시 태어나도 기업인이 되고 싶단다. 그것도 한단계 더 진화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기업인으로 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