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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가격 3,500원, 완제품 가격 7만원.’ 완제품 가격이 원료가격의 무려 20배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바로 섬유산업이다. 사양산업으로 홀대 받던 섬유업계가 첨단 기술과 결합된 ‘신섬유’를 내세워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14일 찾은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의 동양제강 공장. 이곳에서는 이 회사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UHMWPE)의 원천기술을 활용한 시험 생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UHMWPE는 스틸 와이어에 비해 10배 이상 인장 강도가 높으면서도 가볍고 충격이나 마모 등에 대한 내구성이 뛰어난 ‘슈퍼섬유’다. 기존의 방사공정으로는 제조가 불가능해 네덜란드, 미국 등 극소수 선진국만이 생산하고 있다. 동양제강은 기존에 생산하던 선박 로프에 이 기술을 접목해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UHMWPE를 사용하면 강도가 훨씬 강해지는 만큼, 로프의 무게를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선박의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UHMWPE는 초경량 산악용 자전거(MTB) 프레임이나 방탄복, 방탄 헬멧 등 방위 산업, 멀티 스포츠 장비 산업, 건축 자재 등 다양한 산업에도 활용될 수 있어 상용화 단계에 이를 경우 광범위한 파급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기술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국내 수요를 전량 대체하고 해외 수출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세계적으로 관련 시장의 규모도 2005년 약 40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1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상영 동양제강 사장은 “UHMWPE의 생산 대량화,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막대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게 된다”면서 “그야말로 금을 뽑아내는 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양제강과 함께 UHMWPE 기술개발을 진행한 임승순 한양대 부총장(공과대학장)은 “신섬유는 수요 창출 및 응용력이 빠르기 때문에 파급 효과가 크다”면서 “섬유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근의 다른 섬유공장들도 ‘금을 뽑아내는 실’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산 송정동 녹산공단의 광동FRP 공장에서는 선박 내장재로 쓰이는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을 생산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배의 무게를 줄여 선박 연료비를 감축할 수 있게 된다. 이 회사는 또 FRP를 이용한 풍력발전기 블레이드(날개)도 생산할 예정으로, 2MW 풍력발전기 1대당 15톤의 산업용 섬유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1위, 세계 5위의 낚시줄 및 어망업체인 해성엔터프라이즈는 바다 속에서 3년이 지나면 자연 분해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한 생분해성 낚싯줄을 개발하는 등 시장 수요에 맞춘 최고 품질의 제품 개발 및 생산에 나서고 있다. 김정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상무는 “많은 섬유업체들이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신섬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선진국들처럼 국가 차원에서 신섬유 육성정책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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