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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의 남성학] 여성시위 小史
입력2004-11-17 22:05:58
수정
2004.11.17 22:05:58
고려때 '축첩반대'최초의 시위
‘우리나라는 본래 남자는 적고 여자가 많으므로 누구나 일처(一妻)에 그치고 자식이 없는 자도 역시 감히 축첩을 못하나, 청컨대 대소신료에게 서처(庶妻)를 취하게 하되 품(品)에 따라 그 수를 두게 하면 원광(怨曠:홀몸인 남녀의 한)이 해소되고 인구가 증가될 것입니다.’
고려 충렬왕 때 박유가 올린 축첩허용 상소문인데 이 일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즉흥적인 여성시위가 벌어졌다. 상소를 올린 뒤 초파일을 맞아 관등행사에 모인 여인들이 퇴청하는 박유를 향해 ‘첩을 두자고 청한 자가 저 늙은 거지같은 놈이다’라고 삿대질을 하며 야유를 퍼부은 것이다.
이후 1899년 조직적인 축첩반대 시위가 열렸으니 여우회(女友會) 소속 회원들이 고종에게 일부다처제 폐지를 요구하며 장대에 속곳을 매달아 덕수궁 앞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해 궁궐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문이 전국에 파다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여성시위의 역사와 기원은 ‘축첩반대’로 시발되었는데 일상적 시위는 가뭄이 심하면 마을 여성들이 생리 혈이 묻은 속곳을 흔들어 대 양기(陽氣)가 깃든 하늘을 노하게 하여 비를 내리도록 유도하는 ‘재난극복성’이었다.
따라서 최근 국회 앞에서 벌어진 윤락 여성들의 성매매금지법 반대 시위와는 목적이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외국에서는 윤락녀들이 집단으로 권익보호나 합법화를 위해 시위를 벌인 사례가 많은데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윤락 여성들의 시위는 우리나라 성문화에 있어 기억에 남을만하다. 사실 매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더불어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매춘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실효를 거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성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주고 성을 거래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바람직스럽지 않다. 당연히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전반의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성에 대한 국민의식부터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
윤락 여성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확충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성기능 개선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 성 매매를 하는 남성들이 실상 성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왜소 콤플렉스나 조루 등으로 배우자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부족한 성기능을 금전을 통해 상쇄할 수 있는 성 매매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 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남성들의 성기능이 건강해져야 함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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