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8일 벤처기업 대표들을 4년 만에 만나 벤처시장을 ‘장맛비에 젖은 나무’로 비유하며 특단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오찬간담회에서는 “내년도 경제정책의 최우선은 고용창출”이라면서 벤처를 핵심도구로 내세웠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벤처 대책은 ‘한국형 뉴딜’과 함께 내년 경기부양의 쌍두마차가 될 것”이라며 “고용창출 측면에서 벤처는 1등 신붓감”이라고 표현했다. 당국의 벤처 활성화대책은 이 같은 원칙 아래 마련됐다. 시발점은 ‘죽은 기업의 갱생’과 ‘시드머니(종잣돈ㆍ세제혜택)’ 확충. 우선 벤처할 수 있는 의지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패자부활 시스템’이 핵심 축이다. 정부는 99년 1세대 벤처인 중 기술력을 갖추고도 머니게임에 휩쓸려 망한 후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한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내년 상반기 중 선발절차가 이뤄진다. 보증지원과 창업 인큐베이팅을 해줄 계획이다. 벤처시장의 근본적인 체질개선도 도모했다. 산업 구조조정을 최대한 앞당겨 알짜배기 기업들을 중심으로 ‘헤쳐 모여’를 하도록 하겠다는 심산이다. M&A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세금부담을 덜어주는 게 골자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주식교환과 현물출자 등의 차익분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과세 이연시켜주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번에는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특성상 차익이 미실현 상태인 경우가 많고 과세과정에서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벤더 펀드들이 자금을 모집할 때 출자분에 대해 세제혜택을 달라는 요청은 세수감소가 커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코스닥과 제3시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도 구체화됐다. 퇴출기준을 강화하되 거래를 활성화시킬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6년 만에 가격 제한폭이 12%에서 15%로 확대된다. 코스닥시장 제한폭은 88년 시장개설 당시 주가별로 9단계, 200~3,000원이었으나 95년 1월 주가 5만원 이상의 종목에 한해 1개 단계에서 3,000~5,000원으로 3개 단계로 늘렸다. 96년 11월에는 가격 제한폭이 정액제에서 8% 정률로 전환됐고 98년 4월에는 12%로 확대됐다. 코스닥 선물시장을 활성화하는 한편 투명성 진전 추이를 감안해 ‘록-업제도(상장 후 주식매각 제한)’ 등도 정비할 계획이다. 바이오 등 차세대산업을 코스닥에 진입하도록 요건을 완화해줄 예정이다. 다만 수익성 악화 기업들은 조기 퇴출하고 불법행위자가 기업을 인수할 때는 상세정보를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3시장 활성화는 거래종목을 2~3배 수준으로 대폭 늘리도록 각종 거래제한 조항들을 풀어주는 방안이 강구됐다. 현재 제3시장은 72개 종목이 등록돼 하루 거래량이 2만~9만주에 불과하고 거래대금이 1,000만원 미만인 경우도 적지않다. 이에 따라 제한적으로 경쟁매매 시스템을 도입하고 관련 세제를 정규시장 수준으로 합리화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가 야심작으로 내세운 사모주식투자펀드(PEF)의 일부 지분을 유동화해 이곳에서 거래하도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3시장 내 소액주주들을 위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또 하나의 핵심사항은 벤처캐피털 육성이다. 벤처캐피털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도록 자본금 요건을 100억원에서 30억~50억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펀딩이나 투자주식 매각 등에 대한 세제지원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코스닥이나 제3시장이 돈을 빼갈 수 있는 장소라면 벤처캐피털은 사업 초기 돈을 투하하는 저장기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처업계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증권가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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