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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대학 연구비…교수들 '쌈짓돈'
입력2005-12-11 09:59:13
수정
2005.12.11 09:59:13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대다수 대학 심각해 제도 개선 시급"
검찰이 5개월 넘게 진행한 대학 교수 연구비 횡령 수사 결과 이공계 전반에 관행으로 퍼져있는 도덕적 해이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대 교수 2명이 올 7월 구속된 데 이어 서울대, 연세대 등 투명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진 명문 국립ㆍ사립대 교수들이 추가로 사법처리돼 연구비 비리가 상당수 대학에 만연돼 있음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이번 수사로 공금관리에 구멍이 뚫려 연구비가 줄줄 샌다는 사실을 파악한 대학들은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과학기술부와 교육부도 연구비 비리 근절을 위한 근본 대책 마련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 제자를 `머슴'처럼…부끄러운 스승 = 이번에 추가로 구속된 광운대 최모 교수와 연세대 변모 교수의 연구비 횡령 방법은 연구원 인건비 착복과 허위영수증을통한 연구비 부풀리기 등으로 7월 적발된 서울대 공대 교수 2명과 유사하다.
최 교수는 2000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보조 연구원들의 계좌로 지급된 인건비를 자신의 통장에 다시 입금하도록 한 뒤 연구원들에게 매달 20만~30만원 정도만 나눠주고 나머지는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는 대학원생들에게 자애를 베풀기는커녕 기본적으로 지급해야할 연구비를 가로채 자신의 배를 불렸다는 점에서 `스승의 도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실제 사지도 않은 기자재를 구입한 것처럼 허위 세금 계산서를 거래 업체에서 받은 뒤 이 계산서로 연구비 2억5천여만원을 타내는 등의 방법으로 모두 9억여원을 챙기기도 했다.
최교수는 이렇게 빼돌린 연구비를 자기 명의의 벤처회사 운영 자금으로 썼으며그것도 모자라 연구원들을 회사 업무에 동원하기까지 했다.
산학협력을 활성화하려고 지원하는 벤처 기업을 연구비 횡령의 `전진기지'로 활용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거래 관계를 이용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요구하는 것은 기자재를 납품하는 영세업체가 사실상 거절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하는 범죄"라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사 대상이 된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교수는 물론 학생들조차 별다른죄의식 없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스승인 교수들로부터 제자들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악용하는 비리 수법을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다.
함께 구속된 변 교수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제자였던 동료 교수로하여금 연구비 관리계좌에서 일정액을 수시로 인출해 자신의 계좌에 옮기는 방법으로 인건비 등 2억3천만원을 챙겼다.
그는 이 돈을 가족에게 보내거나 동료 교수의 주택구입자금으로 주는 등 쌈짓돈처럼 써댔다.
변교수는 1998년까지 연구비를 빼돌려 8억9천만원을 만들고 이를 120개가 넘는은행 계좌에 관리하면서 6억6천만원을 부동산 투자에 썼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대 윤모 교수와 전모 교수는 허위세금계산서로 각각 2억7천만원, 1억4천만원의 연구비를 챙겼지만 이를 학생 등록금 납부, 연구실비 등 공적 용도에 사용한점이 참작돼 불구속 기소됐다.
전형적인 연구비 빼돌리기 외에 새로운 유형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 교수도있었다.
연세대 A교수는 학내에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부동산 투기 강좌를 열어 3년간 7억원을 챙겼다. A교수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0차례에 걸쳐 변호사나 고위공무원,기업인 등을 대상으로 2~3개월 코스의 강좌를 진행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검찰 관계자는 "거액을 벌게 해주는 일반인 대상 강의에 신경쓰느라 실제 제자들을 위한 강의는 자연히 부실해지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검찰은 A교수의 이런 비위 사실을 대학 당국과 교육부에 통보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 검찰 "대학 살리자는 수사" = 검찰이 연구비 비리에 칼을 빼든 것은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일부 교수들 사이에 관행이 돼 버린 연구비 비리 척결이 요원하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연구비 비리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 내에서 지식인인 교수들에 의해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이어서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행히 검찰 수사로 대학들은 반성의 모습을 보이며 연구비 관리 체계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는 7월 검찰 수사로 공대 교수 2명의 부정이 드러나자 곧바로 비리 교수들을 해직하고 자체 개선안을 마련해 교육부에 보고했다.
또 서울대와 연세대를 중심으로 인건비 풀링(Pooling)제, 기자재 구입의 일괄관리 및 외부 감사시스템 마련 등 개선책을 강구하고 있으며 이런 움직임은 전국 대학으로 퍼지고 있다.
검찰이 수사를 더 확대하거나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도 대학들이 발빠르게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는 등 확실한 메시지를 던져줬다고평가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수사 발표를 하면서 "연구비 비리는 비록 상당수 교수의 공통된 문제이지만 연구에 전념하는 다수의 양심적 교수들까지 함께 매도되거나 연구풍토가 저해되는 분위기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비리 관행을 타파하고 메시지를 던져줌으로써 대학을 살리자는수사였다"고 자평했다.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이지원 검사는 "수사를 하면서 실제 연구에만 매달리던 유능한 인재들이 상처를 받는 모습에 안타까웠다"며 "수사를 무작정 확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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