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0집에 해당하는 큰 패인지라 보통의 경우에는 10집이나 20집짜리 끝내기쯤은 희생하고서 대마를 살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창호는 구리의 흑5도 받아주었고 중앙의 흑11도 받아주었다. 처절한 버티기였다. 형세가 넉넉한 구리는 본전이나 챙기겠다고 흑23으로 이었고 이창호는 비로소 24로 따내어 우변의 백대마를 살렸다. “상황이 좀 개선된 건가?”(필자) “여전히 흑승 무드예요.”(윤성현) “그렇게 처절하게 버티었는데 효과가 없었단 말인가? “전혀요.” 사실은 우변에서 이창호가 거대한 자기 대마를 방치하고 딴전을 피웠을 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승부는 끝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극약처방을 들고나왔겠는가. 흑49(실제 수순으로는 2백49)에서 비로소 던졌다. 계속해서 저항한다면 참고도의 백1 이하 8이 예상되는데 아무리 끈질긴 이창호지만 이런 뻔한 수순까지 확인하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진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이창호가 정말 스타일을 구겼어. 상대방의 초무식 행패에 이리저리 시달리다가 항복한 셈이니까.”(서봉수) “요즘은 구리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의 여러 청소년 기사들이 초무식으로 나가고 있어요. 그게 시대적인 추세인 것 같아요.”(윤성현) 일본이 세계 바둑을 리드하던 시절까지는 모두들 품위 있는 바둑을 두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기사들이 주연으로 등장한 이후에는 바둑이 달라졌다. 죽창으로 내지르는 잔혹함과 무정함. 피비린내와 포연이 자욱한 바둑이 되었다. 그들의 선두에 중국의 구리(古力)가 뛰어가고 있다. (4, 10, 16, 22…1의 오른쪽. 7, 13, 19…1) 249수 끝 흑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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