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미술은 대중문화만큼 일반인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 이는 비교적 안정된 이들의 여가활동으로 남아있으며, 고부가가치 투자대상으로서의 지위가 다른 기능들 보다 우선시 되는 경우도 많다. 이제 4.000만 달러라는 금액으로 경매에서 팔린 반 고호의 ‘해바라기’는 그 의미가 어떻게 변했을까…” 미술교재를 연상시키는 프레임에 그림은 비워둔 채 그의 생각만 글로 옮긴 박이소의 96년작 ‘미술그림’의 한 부분이다. 예술가에게는 인생 전부가 걸린 작품이 상품으로 둔갑하게 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을까. 2004년 4월 심장마비로 숨진 고(故)박이소. 로댕갤러리가 올 첫 전시로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박이소의 작품세계를 회고하기 위한 유작전 ‘탈속의 코미디’를 마련했다. 마흔 여섯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그는 현대 미술 담론에 해박한 이론가이자 실천적 사색가였다. 본명(박철호)대신 박모, 박이소 등으로 활동했던 그가 세상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뉴욕 유학 시절인 85년 브루클린 그린 포인트지역에서 시작한 대안 전시공간인 ‘마이너 인저리’를 운영하면서부터다. 당시 공동 운영자였던 샘 빙클리 에머슨 대학 교수는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미국인의 관점에서, 박모는 우연히 마주친 멀고도 강렬한 사람이었다. 85년 당시 예술가들의 정치적 야심에도 불구하고 마이너 인저리는 많은 지역 미술가들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전시는 생전의 대표작들과 드로잉과 설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자료 46여점이 전시됐다. 고인이 개관했던 대안 전시공간 ‘마이너 인저리’의 활동내용이 담긴 자료와 공책 20여권을 빼곡이 채운 작품계획서는 고인이 죽음을 예감했던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게 만든다. 홍라영 수석부관장은 “2000년 귀국 후 삼성디자인학교(SADI) 교수로 활동할 때부터 박이소의 개인전을 준비했으나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제서야 관객들에게 선 보이게 됐다”며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던 작가 이주요가 ‘박이소에게 받치는 경의’라는 작품을 출품할 정도로 당시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작가”라고 설명했다. 그가 남긴 문서들을 바탕으로 복원한 작품들도 여럿 있다. 뜻을 알 수 없는 설치작품 ‘팔라야바다(FALLAYAVADA)’는 지난해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그가 남긴 문서로 복원, 전시돼 그를 기억했던 많은 미술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전시는 3월10일~5월14일까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는 일반인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02)2259-7781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