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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화] ‘살인의 추억’
입력2003-04-24 00:00:00
수정
2003.04.24 00:00:00
박연우 기자
1986년 한 지방에서 젊은 여인의 사체가 발견된다. 얼마 뒤 또 한명의 여성이 살해당하면서 경찰서는 분주해진다. 사건발생지역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무당눈깔`이란 별명의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 그리고 `서류는 거짓말 안 한다`는 신조 아래 논리적인 추리를 벌이는 서울 시경의 자원자 서태윤(김상경)이 배치된다.
몇몇 용의자를 잡아들이지만 모두 범인과 관계없는 인물로 밝혀지고,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노선을 가진 두 형사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용의자가 검거되고 사건의 끝이 보일 듯 하더니, 매스컴이 몰려든 현장 검증에서 용의자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살해하거나 결박할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을 이용한다. 박두만은 현장에 털 한오라기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아 나서는가 하면 유명한 점집의 충고에 따라 무덤에 절을 하기도 한다. 사건 파일을 검토하던 서태윤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다시 감추고 냄비처럼 들끓는 언론은 형사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형사들을 더욱 강박증에 몰아 넣는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은 누군가.
25일 개봉될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은 익히 알려진 대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명의 부녀자가 숨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소재다. 지난 1996년 초연된 김광림 연출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바탕으로 실제 사건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시나리오화 됐다.
봉준호감독은 “형사와 범인의 지적스릴러는 `양들의 침묵`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실제 그 자체만으로 코믹하기도 하고 동시에 대단히 공포스러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는 형사와 살인범 사이의 게임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치명적 매력을 가진 살인마도, 이상심리의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에게 두뇌싸움을 걸지 않는다. 다만 범인에게 희생당한 피해자의 절규와 악랄한 범행에 치를 떠는 형사들의 분노, 그 모든 것을 조장 또는 방조한 시대의 침묵을 일깨우고 있다.
1980년대는 한국사회의 급변기다. 아시안게임과 (1986)과 서울올림픽(1988) 그리고 박종철 사망을 은폐조작(1987)하고 권인숙을 성고문(1987)하는 등으로 대부분의 경찰조직과 공권력은 시위진압에 투입됐다. 영화에서는 등화관제 훈련, 반정부 시위 등을 살짝살짝 비추며 당시 공권력이연쇄살인에 그토록 무력했던 까닭을 은유한다. 이 과도기속에서 경운기가 시도 때도 없이 탈탈대는 시골 촌구석에서 발견되는 엽기적인 시체라는 서로 상반되는 이미지는 영화 `살인의 추억`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현재까지 미궁에 빠진 사건으로 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해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봉감독의 연출력이 다시한번 빛난다. 형사와 형사, 형사와 용의자, 수사팀과 주변인물간의 캐릭터 대결이 한껏 당긴 활시위와 활처럼 팽팽하다.
특히 송강호는 그가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었다는 느낌을 줄 만큼 관객을 웃겼다가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한다. 그의 상대역 김상경 역시 송강호와는 반대로 10KG이상 체중을 감량하고 덥수룩한 머리와 지저분한 수염으로 점점 광기로 미쳐가는 서태윤역을 소화해냈다. 대학로에서 건져낸 조연들도 적재적소에서 제몫 이상을 해냈다. 김형구(촬영)와 이강산(조명)이 꾸며낸 화면도 빛바랜 앨범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신들린 듯한 두 배우의 연기, 그리고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여 찬사를 받은 봉준호감독에 대한 평가까지 현재 화제의 영화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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