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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투신권 경영정상화, 수급개선의 첫걸음
입력2000-04-23 00:00:00
수정
2000.04.23 00:00:00
정구영 기자
최근 국내증시는 이른바 악성(惡性) 동조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나스닥시장이 하락하면 코스닥시장은 물론이고 거래소시장도 하락하지만 정작 나스닥시장이 오르면 소폭 반등에 그치고 있다.정부는 연·기금 동원, 주식 상·하한제 폐지 등의 대책을 성급히 발표했다가「어설픈 대책」이라는 시장의 핀잔만 들어야 했다. 특히 자기 코가 석자인 투신권을 비롯해 기관투자가에게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했다가 관치금융의 부활이란 혹평까지 받았다.
이는 결국 증시에 직접적이고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차원의 대책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한 증시회복은 어려울 것이란 반증으로 풀이되고 있다.
◇금융시스템 불안이 증시로의 자금유입을 막는다=증시 격언중 수급은 재료에 우선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초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주가가 급락한 것이 대표적 케이스.
그렇다면 이같은 수급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인가. 증권업계는 무엇보다도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이 증시로의 자금유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시중에는 자금이 넘치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시중 단기성자금은 221조6,300억원에 달한다. 이같은 단기성 자금규모는 지난해말의 207조원에 비해 15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금이 증시에는 유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빠지고 있다.
증권업계는 주식시장이 현재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보다 많은 이익을 내고 부채비율을 적정수준으로 낮추는 등 질(質)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대우채권 정리, 투신사 처리, 부실금융기관 경영정상화, 채권시가평가제 도입 등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시스템이 안정돼야만 증시로의 원활한 자금유입을 통해 고질적인 수급악화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신권, 금융시스템 불안의 핵=투신권 부실은 금융시스템 불안의 핵이다.
투신권의 부실로 인해 전체 금융시장의 자금흐름에 동맥경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다 증시회복을 위해서는 투신권의 경영정상화가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투신권은 환매요구 증가로 주식형 수익증권 수탁고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신규자금 유입은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 증시 자금조달의 주요 루트인 투신사 수탁고는 지난해 7월 257조원에서 최근에는 167조원으로 줄었다. 10개월 사이에 90조원이 빠져 나간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주식형 자금의 이탈도 심화되고 있다. 이와관련, 이달들어 지난 19일 현재 주식형 수익증권 수탁고는 65조9,626억원으로 지난해 9월말의 43조1,375억원에 비해 22조8,251억원이 늘었다. 그러나 하이일드펀드(11조4856억원)와 CBO펀드(10조5038억원), 그리고 지난해 10월 공사채형에서 주식형으로 옮긴 전환형펀드(11조여원) 등을 감안하면 순수 주식형 수익증권 수탁고는 11조원 가량 줄었다.
◇잠재부실 심각하다=투신권의 수탁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주가하락에 따른 수익률 부진이 표면적 원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잠재부실 등으로 인해 투자자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투신권의 잠재적 부실채권 규모는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투신사들은 지난 회계연도 결산에서 무보증 대우채권에 따른 손실 2조5,000억원을 반영했으며, 이는 곧바로 자본잠식으로 연결됐다.
투신사들은 이밖에 대우관련 담보 CP(2조2,000억원), 보증 대우채(9조4,000억원), 대우브리지론(2조원), 리스채 및 기타 부실채(4조원) 등의 잠재부실도 안고 있다.
최근 투신사들은 이같은 잠재부실을 털어내기 위한 자구노력에 나서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상태다.
실제 투신권 부실의 상징인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은 각각 2조원, 1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음에도 경영정상화는 요원한 상태다. 한투와 대투에 가려 문제의 심각성이 다소 간과되고 있지만 재벌계열 투신사와 후발투신사 역시 부실의 폭풍권안에 진입해 있는 상태다.
재벌계열 투신사와 후발투신사는 현재 금융당국의 증자명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라 당장 간판을 내리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갈 길은 산너머 산이다.
실제 재벌계열 투신사와 후발투신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계열 투신사는 지난해 재벌과 은행이라는 후광을 활용해 은행, 보험 등 기관자금을 대규모로 조달했지만 최근에는 수탁고 감소는 물론 정상적인 자금거래도 어려운 실정이다.
◇아직도 MOU 체결이 안되고 있다=정부는 최근 한투와 대투의 경영정상화에 대한 밑그림은 그려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투는 우선 2005년까지 현재 21조원 가량의 수탁고를 40조원으로 늘려 지원된 공적자금 1조원을 갚아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를 판매사와 운용사로 분리해 영업권(약 6,000억원)을 매각하고, 클린화작업을 통해 고객의 수익률을 보전하면서 투자자의 신뢰를 이끌어 내겠다는 복안이다.
한투의 경영정상화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타 투신사 역시 부실채권을 솎아내는 클린화 작업을 통해 고객신뢰를 회복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투신권 경영정상화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영정상화계획(MOU)체결이 무슨 이유에선지 차일피일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관련, 증권업계는 대투가 나라종금과 영남종금에 물린 브리지론 형식의 대우지원자금 손실률을 얼마로 계상할 것이냐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입장차이를 보여 MOU 체결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 곳곳에 걸림돌=투신사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금조달이다.
한투의 이근갑(李根甲) 전략기획팀장은『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적어도 2조원이 더 필요하다』면서『정부가 한은특융 등 장기저리자금을 통해 추가 공적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李팀장은 특히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차입비용이 너무 부담된다며 증권금융채 등 5% 미만의 저리 국고자금이 수혈되기를 원했다.
대투의 김창문(金昌文) 투자본부장 또한『고유계정으로 넘어간 부실채권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성업공사 등 정부측에서 장부가의 30~40% 수준으로라도 매입해 주면 자금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투자한도에 제한을 받지 않는 주식형 사모펀드 허용, 근로자우대상품 등 세제혜택상품 인가, 마을금고·연기금·공제회 등의 주식상품 가입 규제완화 등도 투신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대책들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세금으로 이뤄지는 추가 공적자금 조성에 거부감을 피력하고 있고, 특히 세제혜택상품 및 신상품 허가도 금융권 전체의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투신권의 경영정상화가 조기에 이뤄지지 않고는 증시의 수급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좀더 전향적인 입장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정구영기자 GYCHUNG@
홍준석기자JSHONG@SED.CO.KR
입력시간 2000/04/2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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