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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영화' 반응 시큰등
입력2000-04-27 00:00:00
수정
2000.04.27 00:00:00
이제 섹스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야하다’ ‘벗었다’ ‘적나라한 섹스’라는 표현이 붙거나, ‘노랑머리’처럼 심의보류와 ‘논란 끝에 심의통과’란 말만 나와도 몰려들던 관객들이 달라졌다. 서울에서 ‘거짓말’이 29만명, ‘색정남녀’는 3만명, ‘감각의 제국’은 13만5,000명. 모두 예상외로 저조하다. ‘거짓말’이 논란 끝에 심의를 통과해 지난 1월8일 개봉할 때만 해도 제작사와 극장들은 “적어도 50만명”이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고, 다른 영화들은 잔뜩 겁을 먹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감각의 제국’부터는 수입사들이 의식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포르노냐, 예술이냐’식의 논쟁을 부추키려고 발버둥쳤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밤볼라’처럼 야한 영화로만 선전하다 참패를 당한 영화도 한두 편이 아니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요즘 관객들은 포르노적인 영화를 노골적으로 기피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유통구조(매체)의 변화 때문이다. 극장은 이제 더이상 성적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은밀한 공간이 아니다. 인터넷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음란사이트’를 통해 훨씬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성의 엿보기가 가능해졌다.
시대가 더이상 섹스영화에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만든 것도 큰 이유이다. 과거 억압적인 사회구조에서 ‘금기’로 규정돼 표현이 제한됐던 성의 과감한 표현은 일종의 그 사회와 지배층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감각의 제국’에서 이탈적 성행위들이 전쟁이나 군국주의, 산업사회의 소외문제와 연결돼 읽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바뀌었다. 먼저 성의 표현 자체가 자유로워졌고, 기존 성관념을 뒤집는 담론들이 나오면서 이제 성은 금기에 대한 도전 수단으로서의 금기가 아니다. 비판의 가장 큰 대상이자 온갖 부조리의 근원인 이데올로기도 붕괴됐다.
성에 대한 자유로운 담론은 성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고 있다. 남성중심적 지배구조를 정당화했던, 남성 관음증의 가장 큰 근거이자 쾌락이었던 남·녀의 성적 차별(우위와 열등)도 무너졌다. 여기에는 지구 생태계 위기에 따른 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치부여도 큰 몫을 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나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보듯 기존의 이분화한 성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생산성(모성)으로서 남성보다는 여성의 성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성은 더 이상 관음증의 대상에 머물지않게 됐다. 때문에 특정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런 영화는 소수 마니아들만이 관심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극장가에는 단순한 자극이나 이탈적 성을 다룬 영화들이 줄을 잇고 있다. 29일 ‘섹스: 애나벨 청 스토리’ 개봉에 이어 5월에는 15세 소녀의 섹스와 변태적 행위를 다룬 ‘룰루’(감독 비가스 루나)와 시체와 성관계를 갖는 ‘키스드’(린 스톱케비치)가 선보일 예정. 전주국제영화제까지 프랑스판 ‘감각의 제국’이라고 불리는 ‘로망스’(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를 상영한다.
모두 몇번의 심의불가판정을 받았거나, 청소년의 섹스와 변태적 행각을 다룬 작품들이다. ‘거짓말’을 계기로 유연해진 심의 덕분이다. 오히려 등급외전용관이 있는 것보다 포르노성 영화가 더 자유롭다는 시각도 있다.
김수용 영상물등급위원장은 “표현의 자유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되는 내용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런 작품에 무작정 몰리지 않는 우리 관객들의 수용능력이 놀랍다”고 했다. 영화계에서도 외적 통제(심의)보다는 관객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이다.
어차피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단순한 하드코어 섹스물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시무씨는 “그래도 ‘이 영화는 먹힐 것’이라며 제작과 수입을 하는 것은 큰 착각일 수 있다”고 했다.
이대현기자 입력시간 2000/04/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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