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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히로히토 때가 그리워”
입력2003-08-13 00:00:00
수정
2003.08.13 00:00:00
일본에서 천황 히로히토(裕仁ㆍ1901~89)를 기리는 작업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도쿄(東京) 근교 다치가와(立川)시와 아키시마(昭島)시에 있는 국영 `쇼와(昭和)기념공원`에 `쇼와천황기념관`(가칭)을 짓는 공사가 이달 말 착공돼 2005년 개관할 예정이다. 쇼와는 히로히토의 연호다.
기념관은 정부가 건설하고 정치인, 경제인, 학자 등으로 구성된 `쇼와성덕(聖德)기념재단`이 임대해 전시를 맡게 된다. 기념관 건립 운동을 해 온 이 재단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금해 운영비를 댈 방침이다. 기념관에는 히로히토가 사용했던 피아노, 식물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연구 자료 등 전쟁과는 관계 없는 유품이 전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생일인 4월 29일을 경축일(`쇼와의 날`)로 지정하는 법률도 지난달 17일 중의원을 통과했다. 9월 정기 국회에서 참의원 통과도 확실하다. 법안을 낸 자민당은 “격동의 날들을 지나 경제부흥을 이룬 쇼와시대를 회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2000년 이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을 때 “쇼와시대에 대한 평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반대했던 제1야당 민주당도 “황실을 존중한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며 찬성으로 돌아섰다.
일본의 124대 천황으로 1926년 즉위한 히로히토는 한국ㆍ대만 식민 지배, 중국 침략, 태평양 전쟁 등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으로 당시 `현인신(現人神ㆍ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았다.
2001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역사학자 허버트 빅스는 저서 `히로히토와 현대 일본 만들기`에서 “히로히토 천황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깊숙이 연루됐고 패전 후에는 미국의 묵인 아래 전범재판을 피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를 보호하려는 일본 지도부와 그의 권위를 점령정책에 활용하려는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학계는 그에게 전쟁을 주도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과 군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여전히 맞서고 있다.
2000년 도쿄에서 세계 여성ㆍ인권단체들 주최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전후 세대가 전체 인구의 70%를 넘어서고 불황이 계속되면서 평범한 일본들은 그에게서 전쟁의 참상보다는 고도성장 시대의 향수를 느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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