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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꼬리

검찰의 16대 대선자금 수사를 지켜보는 민심은 흉흉하다. 돈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그 돈을 전달하는 기기묘묘한 방법들 하며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기 위해 속이 들여다보이는 술수를 쓰기에 혈안이 돼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민심을 분노하고 절망하게 한다. `배춧잎 차떼기`라는 신문 제목은 재치가 아니라 분노다. 만남의 광장이 범죄장소로 이용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뜻밖이 아니라 허탈이다. 100억원을 월간지 부피로 압축하는 기술은 기가 차는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히는 일이다. 100억원을 실은 차는 교통사고로 뒤집어지지도 않느냐는 시중의 얘기는 넋두리가 아니라 절망이다. 이런 세태 속에서 몇 가지 상념을 떠올린다. 먼저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지금의 비리가 드러날 수 있었을까. 감춰질 것이었다면 그가 떨어진 것이 다행은 아닐까. 이 후보가 떨어진 것은 한나라당이 배가 불러 뛰지 못할 정도로 돈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은 아닐까. 집권한 지 1년도 안돼 대통령 측근 중의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쇠고랑을 찬 정부가 두번 다시 나올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10분의1` 발언의 진실은 무엇인가. 대선자금만 한나라당의 10분의1이라는 얘기라면 당선 이후에 받았을지 모르는 돈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인가. 가능성에 거는 돈이 `베팅`이지만 확정 후에는 돈을 거는 게 아니라 갖다 바치는 것 아닌가.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검사는 과연 베팅과 `헌납`의 차이를 밝혀낼 수 있을까. 이런 상념 끝에 이르게 된 결론은 당선자의 경우로 보나, 낙선자의 경우로 보나 16대 대선에 실린 역사의 섭리가 있다면 확실하게 정치개혁을 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말해주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돈에 꼬리가 달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깨끗하게 돈을 세탁하고 꼬리를 잘랐어도 잡자면 얼마든지 잡히게 돼 있다. 이것은 정보화ㆍ전산화 시대의 상식임에도 정치인들만이 이를 애써 외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삼성그룹의 대선자금 전달방법은 그 점에서 의미 있는 시사를 함축하고 있다. 현찰로 바꿔 차떼기하는 등 다른 기업들이 요란을 떤 것과는 대조되게 삼성은 국민주택채권을 책 모양으로 만들어 전달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라는 평가가 그럴듯하다. 국민주택채권은 무기명 채권이기 때문에 현찰과 같지만 채권인 만큼 맘만 먹으면 거래과정은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하다. 요컨대 받는 사람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는 돈이다. 정치자금에 관한한 정치인들은 다다익선 청탁불문 관행에 너무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꼬리불문의 개연성도 여전하다고 봐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돈을 주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되면 어떤 기상천외한 새 수법을 개발해서라도 돈을 준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수수관행이 억제되려면 받는 측이 조심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치자금을 수표와 카드로 받고 지출하게 하는 것이 정치개혁의 핵심인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최대의 심적 부담을 주는 방법으로 전경련이 검토한 것 가운데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에 대해 경영에 타격이 갈 만한 강력한 처벌을 자청한다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경영에 타격이 갈 만한 처벌이라면 기업주의 구속이나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다. 이 정도나 돼야 정치인들이 기업에 손을 벌릴 때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겠나 하는 울며 겨자 먹기식 처방이다. 여기에 덤으로 정치권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요구에 기업의 밀고권을 인정하는 특례를 둔다면 정치개혁에 시너지가 될지 모르겠다. 비리 정치인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정치로부터 영구 퇴출에 준하는 벌을 받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논설실장 im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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