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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창조 경영'] <3부-4> '잠들지 않는 시장' 러시아

"경제冬眠 끝" … 글로벌기업 U턴<br>넘치는 오일머니 앞세워 침체기 털고 성장 거듭<br>日·유럽기업들 속속 재입성…최대격전지 부상<br>"기득권 가진 국내기업들 공격적 수성전략 필요"

러시아는 삼성·LG와 소니·노키아·샤프 등 글로벌 기업들이 공격 마케팅을 펼치면서 기존 시장 질서의 파괴와 창조를 통한 창조경영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전자매장을 찾은 고객이 삼성전자 제품을 고르고 있다.


이돈주 러시아 법인장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뜨료쉬까’. 똑 같은 모양의 인형을 여러 개 배 안에 가득담고 있는 이 인형은 토지의 비옥함과 다산을 상징한다. 러시아 거리, 상점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마뜨료쉬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 시장의 모습과도 너무도 흡사하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 끝 시베리아의 블라디보스톡과 7시간의 시차가 날 정도로 방대한 국토. 그 넓이만큼이나 러시아 시장은 규모와 성격이 다른 각각의 시장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한 개의 마뜨료쉬카에 같은 모양, 다른 크기의 인형들이 잔뜩 들어있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러시아는 잠들지 않는다. 모스크바에서 출근해 일을 시작할 시간이면 블라디보스톡은 퇴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세계 2위 원유생산국의 오일머니가 24시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이돈주 삼성전자 러시아 지역본부장(상무)은 “소니ㆍ노키아ㆍ샤프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유능한 마케팅 인력을 러시아에 배치하는 등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잠들지 않는 러시아는 기존 시장 질서의 파괴와 창조를 통한 창조경영의 시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펩시-보드카’… 글로벌 기업이 몰려온다=러시아엔 펩시보드카라는 말이 있다. 한때 루블화의 가치 하락으로 물물거래를 하던 러시아가 스톨리치나야 보드카와 펩시콜라 시럽을 교환하는 30억달러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만들어진 말이다. 이는 러시아 경제의 암흑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명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선언 이후 이곳을 떠났던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 이탈리아 메를로니, 터키 베스텔, 독일의 보시ㆍ지멘스, 일본의 파나소닉, 도시바, 도요타 등은 최근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다시 러시아 시장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때문인가. 모스크바의 젊음의 상징인 아르바트 거리 카페엔 펩시보드카라는 칵테일이 있다. 서울경제 취재진의 눈엔 콜라의 달콤하고 톡 쏘는 맛과 무미 건조하지만 독한 보드카가 어울린 이 칵테일이 과거 보드카에 취해 떠났던 글로벌 업체들을 다시 러시아로 불러들이며 러시아 시장을 글로벌 브랜드의 최대 격전지로 만들고 있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공격적 수성전략 필요=삼성ㆍLGㆍ현대차 등 국내 기업들이 기득권을 갖춘 러시아 시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방어적인 수성보다는 공격적인 수성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지 생산체제 구축 등을 통해 러시아의 WTO가입에 따른 관세부담 등을 사전에 막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적기에 개발ㆍ생산ㆍ공급할 수 있는 체인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오승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라시아 철도(TAR)의 진행과 함께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랜드 브릿지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내 기업의 현지생산기지는 러시아는 물론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허브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ㆍLG 등 국내 기업들은 이미 현지 맞춤형 생산기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 LG전자가 지난 9월5일 모스크바에서 72km 떨어진 루자지역에 디지털 가전공장을 설립, LCDㆍPDP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LG전자는 2010년까지 1억달러를 투자하고 7개부품업체가 1억5,000만달러를 공동투자해 2008년부터 품목별로 연간 100만대씩을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이르면 내년 초 모스크바 남쪽에 1억 달러를 투자, 생산기지를 건설한다. 2009년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인 삼성전자 러시아 공장은 2008년 하반기쯤 LCD TV를 우선 생산하고 향후 백색가전으로 생산품목을 확대해 CIS 지역의 생산거점 역할을 한다는 방침이다. ◇네덜란드 병은 감기처럼 지나간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세가지는? 노상강도와 바가지상인 그리고 경찰이라고 한다. 혹시 경찰을 만나면 아예 눈길도 주지말고 피하란다. 셰르메찌예브 공항 입국심사는 까다롭기보다 지루하다. 3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지만 영어로 된 안내문은 찾아볼 수도 없다. 하긴 입국신고서도 러시아어로 돼 있으니. 짧게 머물며 살펴본 러시아의 인프라 수준은 투자요건으로는 낙제점이다. 현지 기업인들은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러시아를 평가하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가자본주의 체제하에 급성장은 관료주의라는 병폐를 끌고 오지만 이도 가벼운 성장통에 불과하다는 것. 러시아 시장은 기회와 위기가 공존한다. 2007년에도 6.5%의 고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려했던 네덜란드 병(자원개발에 의존해 급성장한 경제가 물가와 환율이 상승하며 자체 제조업의 경쟁력을 잃게 되고 자원이 고갈 될 경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현상)도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현재 세계 1위의 물가 수준인 모스크바를 본다면 네덜란드 병의 징후가 보이는 듯 하지만 강한 정부의 정책과 노력, 소비로 인한 내수시장의 성장이 병의 확산을 막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승구 수석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을 필두로 한 러시아 정부는 현재 에너지 의존형 경제를 타파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며 “정부의지가 강하게 실린 산업다각화, 인프라투자,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석유정제, 가스, 식료품, 건설, 유통, 자동차 등을 러시아의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에겐 러시아의 변화 폭과 속도만큼 고스란히 ‘시장 창조의 새로운 기회’로 작동할 것이라는 말이다. ● 이돈주 러시아 법인장
"경쟁사가 넘볼수 없는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
"메인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삼성의 테크니컬 리더십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하겠다." 이돈주(사진) 러시아법인장(상무)은 삼성전자 내에서 손꼽히는 러시아 전문가다. 그는 지난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했을 때 일찌감치 레닌도서관 삼성 광고판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상무는 "글로벌 기업들이 다 떠나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남아야 한다고 본사를 설득할 때는 주위에서 너무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며 "모라토리움 당시 세운 레닌도서관의 광고판이 지금은 (삼성이) 러시아에 보여준 신뢰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 광고판은 현재 모스크바의 알아주는 명물로 취급받고 있다. 그는 러시아 시장을 한마디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평가한다. 석유자원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급성장에 따른 리스크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시장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돈주 상무는 이 점에서 테크니컬 리더십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그는 "러시아 시장이 아직은 북미나 유럽과 같이 첨단제품이 모두 통할 수 있는 시장은 아니지만 삼성은 이런 첨단 기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현지인들에게 미리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트베르스카야의 삼성갤러리에 DMB, 블루레이플레이어, 풀HD TV 등을 전시한 것도 모스크바 시민에게 삼성의 테크니컬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사 생활가전총괄에 있다가 올해 러시아법인장으로 다시 부임, 러시아와 세번째 인연(1998년 법인 파견, 2000년 법인장 부임)을 맺고있는 이 상무는 향후 러시아 시장의 주력제품으로 'LCD TV'를 꼽았다. "휴대폰이 러시아 시장에서 삼성전자 브랜드를 1등으로 만들었다면 LCD TV는 앞으로 러시아의 삼성전자를 경쟁사가 근접할 수 없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R7art' 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LCD TV 보르도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가장 갖고 싶은 가전제품중 첫 번째로 꼽히고 있다. ● '동토의 제국' 녹인 나눔경영
폐업 위기 놓인 볼쇼이극장 자청해서 지원 손길 내밀어
펼치는 사업마다 숱한 화제 '친구같은 기업' 이미지 각인
'러시아의 기억을 되찾아준다' 겨울궁전으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따쥐 박물관. 최근 이곳에서는 18세기 러시아 여제인 예카데리나 2세의 시계 복원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러시아 정부조차 엄청난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문화재 복원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삼성전자가 후원을 떠맡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ㆍLG 등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에서 단순히 물건만 팔지 않는다. 러시아 기업시민으로서 기꺼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나눔경영은 자존심 강한 러시아인들의 차가운 마음을 녹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 고아원 봉사활동이나 심장병 어린이 돕기는 대표적인 사랑의 손길이다. 푸시킨 언어대학에 재학중인 김한나(25)씨는 "러시아민족은 자존심이 강한 만큼 정과 의리가 있는 민족"이라며 "삼성ㆍLG 등 한국 기업들의 나눔경영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한국과 한국기업을 믿을 수 있는 친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러시아에서 활발하게 펼치는 문화마케팅도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의 발레 등을 공연하는 볼쇼이 극장도 삼성전자가 지켜냈다. 삼성전자는 91년 옛 소련 붕괴이후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던 볼쇼이에 자청해서 지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98년 모라토리움 당시 유럽ㆍ일본 기업들이 지원을 끊고 슬그머니 돌아설 때도 삼성전자는 지원을 계속했다. 이 결과 삼성전자는 15년째 볼쇼이의 단독 후원 기업으로 남아있다. 요즘 사정이 나아졌다고 글로벌 기업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도 볼쇼이 측의 답변은 간단하다. "삼성전자만이 영원한 스폰서"라는 것이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지난 2003년부터 톨스토이 문학상을 제정해 현대 러시아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달 6일 개최된 시상식에는 소콜로프 러시아 문화성 장관, 톨스토이의 증손자인 블리디미르 톨스토이 문학상 위원장 등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러시아 나눔경영 담당자인 엘레나 제먀또바씨는 "삼성전자는 러시아에서 제품 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서도 최고의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삼성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러시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활동을 지켜보면 시장을 단지 공략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발전시켜 가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창조적 시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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