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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이 부서지면
입력2002-07-22 00:00:00
수정
2002.07.22 00:00:00
예측 불허의 사건이나 사태가 일어난 다음 빠짐 없이 등장하는 게 하나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다. 이미 그의 예언서에 문제의 재앙들이 '암시되어 있다'는 그런 식이다. 심지어는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까지 일찌감치 '말씀'하신 바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대목에 이르면 황당해 진다. 예언자가 풍기는 이미지는 어디인지 음산한 기분을 준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예언자들은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있고 눈은 깊게 파여 있으며 목소리는 위압적인 베이스다.
아마도 그런 영상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인 듯 싶다. 그리하여 예언은 행복과 희망찬 미래의 전개보다는 재앙과 불행에 대한 경고문이 대부분이다.
'예언'하면 사람들이 바짝 긴장하고 겁부터 집어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에는 예측이란 것이 있다. 예언처럼 음침하지는 않다. 예언이 종교적인 것인데 비해 예측은 과학적이다. 데이터가 입력되고 컴퓨터로 처리되니 과학적이다.
그래서 신뢰성이 있다. 멀리 두고 불행과 재앙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 혹은 가까운 장래의 경제흐름을 알려준다. 우울한 예기도 있지만 즐거운 예고편도 시리즈로 나온다.
금융시장이 세계화되고 주식시장이 팽창하자 경제예측은 본말이 뒤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경제를 판독해 내는 참고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경제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디스가 어떻게 말하고 S&P가 어떻게 짚어보며 그린스펀(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손가락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느냐에 따라 희극과 비극이 연출된다.
이 정도에 이르면 경제예측이 아니라 예측이 경제를 지배하는 '예측경제'다. 그만큼 시장에 영향을 주는 독립적인 힘이 길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언자들이 '불황'하고 합창하면 싱싱하던 시장도 시들시들해 진다. 반대로 '호황'하면 내려앉던 경제 지표들이 머리를 쳐든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린스펀이 "회복될 것이니라" 했는데 영 그 쪽 방향으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신통력에 금이 간 것일까. 하긴 엔론부터 시작된 일련의 회계부정이 들통나면서 분석 판정 예측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드러났다.
입력 자료들이 부실하니 그 생산물에 신뢰가 갈 수 없는 건 뻔한 이치다. 그린스펀도 이 불신기류의 피해를 입은 것 같다. 문제는 예측의 불신이 경제 흐름을 혼돈에 빠뜨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저 음산한 예언자의 소리가 등장할 까 겁난다.
손광식(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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