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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국산 자동차 판매대리점. 쇼윈도에는 각종 판촉 전시물들이 걸려 있지만 방문객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대리점의 한 영업사원은 “겨울철 비수기를 넘기면서 내수가 좀 살아날 줄 알았는데 방문객은커녕 문의전화도 뜸하다”며 “그나마 판매 리베이트 액수만큼 차량 가격을 더 깎아 판매를 해도 영업점간 덤핑경쟁이 워낙 치열해 효과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정은 가전매장도 마찬가지. 강서구 가양동의 한 대형 쇼핑몰 내 국산 가전코너에는 혼수철 특수를 노리고 다양한 기획상품들이 전시돼 있지만 판매실적은 기대를 밑돌고 있다. 매장의 한 관리자는 “예년같으면 디지털TV 같은 혼수 인기제품들은 기획상품으로 내놓자마자 물량이 달릴 정도로 팔려나갔을 텐데 요즘에는 몇 개 가전제품들을 패키지로 묶어 단품 판매시보다 저렴하게 팔아도 실적이 오르질 않는다”고 설명했다. 봄철 내수 특수를 기대했던 국산 자동차 및 가전업계가 때 아닌 ‘꽃샘 바람’을 맞고 있다. 혼수철 내수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하의 판매실적에 고심하고 있는 것.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군은 유럽 및 미국계 수입품에, 저가의 범용제품군은 중국산 등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면서 혼수철 특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내수판매량이 전월 대비 6.1% 증가했지만 현장에서의 체감경기는 통계치와 다른 분위기다. 협회의 김중규 산업조사팀장도 “유가 급등이 지속되는데다 원ㆍ달러 환율 불안에 따른 수출채산성 악화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내수회복세가 3월 들어 주춤하고 있다”며 “일부 신차와 대형 고급차종을 제외하면 판매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수입업계는 연일 판매가 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고가 수입차종은 물량이 달려서 못 팔 정도. 또 판매가격이 3,000만원대 안팎인 중가 수입차종도 국산 범용 자동차시장을 서서히 압박해오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판매가격이 최고 1억7,000만원대에 달하는 페이톤 자동차의 경우 워낙 주문이 밀려 차종을 제때 인도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혼다코리아의 한 관계자도 “2,900만원대까지 가격을 낮춘 CR-V차종은 이미 동급의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앞서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가전업계에서도 고가 주방용품시장은 유럽계인 밀레ㆍ일렉트로룩스 등에 밀리고 있으며 주력인 디스플레이시장에서는 최근 일본산 제품의 역공에 직면했다. 또 저가 시장에서는 하이얼 등 중국산 제품의 파상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국내 대기업들의 영업전략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일반 대리점과 다른 특판전문점을 전국적으로 10~20개 모집, 본격 운영할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외부에 특판전문점을 운영하기는 이번이 처음. 업계에서는 중국의 저가제품과 일본의 프리미엄급 진출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가 내수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자 신규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대차와 손을 잡고 패키지 형식으로 가격할인을 단행하기도 했다. 행사기간 동안 현대차의 에쿠스ㆍ그랜저ㆍ쏘나타를 구입한 소비자가 삼성전자의 파브 PDP TV(42인치 이상)와 LCD TV(40인치 이상)를 구매하면 30만원을 할인해주고 투싼을 구입한 소비자가 삼성전자의 노트북 센스를 구입하면 최고 14%를 할인해주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가전업체들도 중국과 일본 등의 공략이 강화되면서 내수시장 수성에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내 가전업체들도 신규시장 발굴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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