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인력 채용의 덫’에 빠졌다. 인력은 부족한데 정원감축 계획을 맞추기 위해 신규채용은 계획도 잡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자산 5조원이 넘는 20곳의 대형 공공기관 중 하반기 채용계획을 세운 곳은 3곳에 불과하고 상반기와 하반기에 채용을 한 곳은 기업은행 한곳일 정도다. 상ㆍ하반기 모두 신규채용을 하지 못한 곳도 대한주택공사 등 4곳에 이를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하반기 채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형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24일 “채용계획을 짰다는 다른 공기업이 부러울 뿐”이라면서 “정원감축 계획을 맞추려면 앞으로 한동안 신규채용은 꿈도 못 꿉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인력은 충분할까. 또 다른 대형 공기업의 관계자는 “명예퇴직 등으로 떠난 인력이 제법 됩니다. 2년째 신규인력 충원이 없어 일손부족은 둘째 치고 업무의 연속성이 문제 될 뿐입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인력채용을 놓고 공공기관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실제 기획재정부와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20개 대형 공공기관들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직원 채용계획이 있거나 채용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곳은 기업은행과 한국농어촌공사ㆍ한국수력원자력 등 3곳뿐이다. 나머지 17개 기관은 채용을 하지 않거나 아직 채용계획을 잡지 못했다. 채용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곳이 대한주택공사 등 6곳이고 ‘미정’인 곳은 한국전력공사 등 11곳에 이른다. 채용계획이 미정이라고 밝힌 공공기관들은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채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대형 공공기관 중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까지 단 한명의 신규채용이 이뤄지지 않은 곳도 한국철도공사 등 5곳에 이른다. 그간 대형 공기업들이 매년 많게는 200~300명 이상을 뽑으면서 부족한 청년 일자리를 메워줬던 역할을 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들 기관의 채용 중단은 그만큼 청년 고용시장을 어렵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청년인턴제를 실시한다 해서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대신 청년실업자들의 일시적인 고용을 돕고자 시행된 ‘청년인턴제’ 역시 한계에 부닥쳤다. 지난해 대량실업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의 권고로 도입해 1만2,000명의 청년인턴을 채용했지만 상당수의 공공기관은 이를 올해 하반기 중 끝낼 계획이다. 신규고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 인턴들을 언제까지 안고 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탓이다. 때문에 20개 대형 공공기관 중 청년인턴 계약 연장을 검토하는 곳은 농어촌공사ㆍ수출입은행ㆍ인천공항공사 정도에 불과하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신규채용만 정기적으로 진행된다면 청년인턴 중 일부를 흡수할 수 있는 방안도 찾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채용이 없는 상황에서 인턴을 연장하거나 신규인턴을 뽑기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기업 선진화 차원에서 추진했던 공공기관 인력감축을 멈추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늘어가는 청년실업 사태에 인턴확대 등의 임시방편 조치만을 들이댈 수는 없다. 물론 정부는 각 분야의 청년인턴사업이 대거 중단될 경우 실업률이 대폭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규모를 줄여 내년에도 계속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이 역시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매년 자연감소분이 있고 정원조정은 오는 2012년까지 완료하면 되기 때문에 신입채용 여력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다만 정부가 채용을 하라 마라 할 수는 없고 기관이 각자 사정에 따라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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