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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미 자산디플레 상태"

경기회복 기대 갈수록 흐려져 주가·부동산 가격 곤두박질<br>2010년까지 침체 계속되면 본격적인 물가하락 가능성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4.8%를 기록한 가운데 2009년에도 3%대의 비교적 높은 물가 상승률이 예상되는 우리나라에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4~5%대의 고물가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으로서는 ‘디플레’보다 ‘R(recessionㆍ경기하강)’나 ‘S(Stagflationㆍ경기침체 속 물가상승)’가 좀 더 현실성 있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경기침체가 물가하락과 더 심한 경기악화를 야기하는 ‘디플레이션 스파이럴(deflation spiral)’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연구소 소장은 “불과 몇 달 전까지 지속돼온 고유가와 달러당 1,500원을 넘나드는 고환율 등 일부 외부 충격요인을 배제하면 우리 경제는 이미 디플레 상태에 빠져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자산 디플레는 이미 진행 중=10월까지 발표된 경제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현실은 경기침체가 물가하락을 야기하는 ‘디플레이션’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6%를 위협하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10월 현재 4.8%로 둔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은행 물가 목표치인 3.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경제예측기관이 내다보는 내년 물가 상승률도 3%대에 머문다. 2005~2007년의 물가가 2%대 상승률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디플레 우려는 아직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연일 급락하는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디플레의 한 축인 ‘자산 디플레’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자산 디플레가 디플레이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위축과 불경기가 지속될 경우 결국에는 수요감소로 인한 디플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송준혁 KDI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의미의 물가하락(디플레)은 당분간 없겠지만 자산 디플레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며 “내년까지는 디플레가 없다고 봐야겠지만 2010년 이후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본격적인 물가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큼 다가온 ‘D(depressionㆍ불황)의 공포’=게다가 경기회복에 대한 전망은 날로 흐려지는 상황이다. 지금의 경기하강이 불황으로 발전된다면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미국 등 선진국 경제에서 불황과 디플레이션 조짐으로 소비가 얼어붙자 우리 경제는 벌써 성장의 주요 동력인 수출에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고유가가 진정되면서 오일달러에 힘입어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으로 부상한 중동 산유국 경제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산 가격 급락으로 은행 부실화 우려가 날로 고조되자 자금경색과 그에 따른 기업부도ㆍ실업양산 등 불황의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출경기 냉각과 극심한 내수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외국계 기관들이 제시하는 1~2%대 저성장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문제가 기업파산 문제로 변질됨에 따라 경기반등은 적어도 2010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그동안 천문학적으로 풀린 재정과 통화의 부작용 때문에 경기회복 조짐이 나타나면 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2010년 이후에도 경기가 반등하지 못하고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플레이션 정말 올까=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빠질 가능성에 대해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디플레이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디플레가 워낙 어려운 개념이고 상황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 경제는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은 적이 없다. 권 실장도 “1980년대 초반 오일쇼크 여파로 디플레가 발생한 적은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우리 경제에 디플레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누구도 그에 대해 자신 있는 처방을 내리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의 말을 빌면 지금은 ‘물에 빠졌는데 발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어느 쪽으로 가야 바닥이 발에 닿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디플레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스’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플레이션은 ‘향후 기대 물가’, 즉 경제 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에 따라 좌우된다”며 “당장은 아니지만 소비와 투자가 극심한 침체상태를 지속하면 디플레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장은 심지어 “사실상 우리나라는 이미 디플레 상태에 빠져 있지만 환율과 유가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왜곡돼 있을 뿐”이라며 “고용이 줄어들고 임금이 떨어지는 것도 디플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겉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인플레이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디플레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우리 경제의 현실과 방향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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