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한이 한국 대표 중의 하나로 뽑혔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는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어린 저단자가 국가 대표로 선발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이 빚은 불상사라고 극단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철한이 10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창호를 꺾고 국수와 기성이라는 양대 타이틀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보를 유심히 보면 어린 최철한의 바둑에는 이미 대가의 풍도가 엿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판을 압축해 들어가는 요령은 뛰어나 보인다. 자기가 유리할 때 이 요령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다만 그 무렵에는 판을 거시적(巨視的)으로 보는 훈련은 아직 부족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훈련은 10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초속기의 달인인 서능욱9단이 최철한의 초기 바둑에 대하여 한 말이었다. 백92는 기분좋은 선수활용이지만 그 전에 거시적으로 판을 휘어잡는 멋진 수순이 있었다. 참고도의 백1, 3으로 상변을 크게 키우는 구상이 그것이었다. 이 그림은 대표 선수의 하나였던 최명훈7단이 제시했던 것으로 여럿의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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