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공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은 지난 4월 밝힌 내용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몇몇 분야에서는 새롭게 드러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이를 둘러싼 해석의 시각차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우편 독점 깨질 듯=우편 관련 모든 분야에 민간기업이 참여할 길도 트였다. 정부는 미국 측에 보낸 부속서를 통해 “우편법 또는 관련 법률을 개정해 민간 배달 서비스의 범위를 증대하기 위해 우정당국의 독점에 대한 예외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확인했다. 우편물의 분류기준을 현재와 같이 소포ㆍ편지 등 품목별 방식에서 무게나 가격기준으로 바꾼 뒤 일정 기준 이상의 무게나 가격범위에 민간기업의 참여를 늘리는 방식이 되면 자연스럽게 민영 우편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부속서는 전형적인 비구속적 문서이자 선언적 문서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동일품목 세이프가드 재발동 금지=상대국의 제품 수입이 급증할 경우 발동할 수 있는 양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에서는 ‘동일상품 재발동 금지’ 조항이 새롭게 등장했다. 물론 일부 농산물 등에 적용하는 특별 세이프가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우리가 대미 공산품 수출이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산 농산물의 급속한 유입을 막을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가 힘을 잃었다는 점은 적지않은 논란도 예상된다. 방대한 미국 시장에서 우리 주력 수출품 중 관세 철폐시 세이프가드를 유발할 정도로 미국 시장에 급속도로 침투할 공산품은 흔치 않은 반면 관세 철폐시 미국산 농산물이 급격하게 국내로 유입할 가능성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영화 도촬 미수범도 처벌=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도 보호 기준이 강화돼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양국은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도 범죄수익 몰수제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이 제도는 상표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만 인정되던 것이다. 영화관에서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영화를 촬영하는 것은 물론 촬영을 하려고 시도하는 ‘미수범’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또 대학가 등의 서적 복제와 관련, 단속을 강화하고 공공 부문의 인식 제고를 위한 공공교육 캠페인을 시행하기로 했고 불법 복제는 물론 불법 인쇄에 대해서도 단속 집행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속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지재권에 대한 미국의 간섭은 집요해질 전망이다. ◇개성공단, ‘노동기준’ 충족 쉽지 않을 듯=부속서를 통해 ‘역외가공지역’(OPZ)을 지정할 수 있도록 우회하는 방식으로 규정된 개성공단 문제의 경우 협정 타결 직후 관측됐던 대로 적지않은 난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정문은 OPZ 지정조건으로 ▦한반도 비핵화 진전 ▦OPZ 지정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OPZ 내 일반적 환경기준, 근로기준과 관행, 임금, 경영ㆍ관리관행 등을 설정했다. 이 가운데 최대 논란거리는 역시 ‘근로기준과 관행, 임금, 경영ㆍ관리관행’ 등이다. 사회주의 북한의 특성상 국제규범에서 봤을 때 이런 기준의 충족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서는 여전히 “개성공단 제품은 노예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라는 비판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에서 미국으로부터 큰 양보를 얻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들 기준대로라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자ㆍ국가제소 대상 여전히 논란=투자자ㆍ국가제소(ISD)의 대상에 투자계약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가 외국인투자가와 맺은 투자계약상의 의무위반도 ISD의 대상임을 규정한 조항으로 현재 인천 제2연륙교 건설사업이 이런 형식에 해당된다. 정부가 간접수용 범위에서 배제를 추진했던 부동산정책은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이라는 표현으로 포함됐다. 하지만 부동산정책이 아닌 부동산가격안정화정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정부는 이날 협정문과 함께 낸 자료에서 ▦분양가상한제 ▦원가공개 ▦토지ㆍ주택거래허가제 ▦개발부담금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세 강화 등이 부동산가격안정화정책에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부동산가격안정화정책인지 여부는 중재판정 과정에서 판단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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