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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못 해 먹겠다’
입력2003-11-18 00:00:00
수정
2003.11.18 00:00:00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뭘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 재산은 29만원`, 노무현 대통령의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죠` 등 인구에 회자된 말이 많았다. 하지만 한 결혼정보회사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한 것에 따르면 올해 가장 파문을 일으킨 말은 노 대통령의 `대통령 못해 먹겠다`였다. 다소 격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당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노점상부터 농민, 샐러리맨, 기업을 하는 사람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정말 못해 먹겠다`는 말이 쏟아지고 있다. 주위에서 `잘 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 정도다.
청계천 주변 노점상들은 이렇게 몰아내면 모두 다 굶어죽는다고 아우성이다. 농민들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앉아서 그대로 망할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이다.
소비가 급전직하로 줄어들면서 잘 나가던 백화점 매출도 뚝 떨어졌다. 자존심을 구기면서 연말세일을 실시하겠다는 백화점들의 모습이 사뭇 처량하기까지 하다.
기업들은 한 술 더 뜬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비자금 수사로 기업인들을 범죄인 취급한다고 말한다. 경제의 버팀목이라는 자부심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랜 것 같다. 기업 하기가 겁난다는 얘기도 자주 나온다. 내년 경영계획도 아직 잡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데 우리는 이게 뭡니까”라고 말하는 어느 CEO의 하소연도 애처롭다.
더 큰 문제는 정말 해 먹을 것이 없어, 못해먹고 있는 청년 실업자들이다. TV에서 IMF때나 있을법한 공개구직 하는 프로그램조차 등장할 정도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 인가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못 해 먹겠다`는 말은 질시와 반목에서부터 출발한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우러날 때 `한번 해 보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상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난 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부터 서민까지 누구나 `할 만하다` `한 번 해볼만하다` 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아직은 지나친 욕심일까.
<강창현(산업부 차장) chk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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