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9단과는 첫 대결이었다. 입단한 지 3년반이 지났건만 박영훈은 이창호와 대국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거의 모든 타이틀을 독점하고 있는 이창호였으므로 그와 대결을 해보려면 도전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창호는 천원전에는 출전하지 않고 있었다. 흑17로 전개한 수가 서반의 이채였다. 검토실에서는 이 수에 대하여 의문을 나타내는 기사들이 많았다. “아마추어 같은 착상 아닐까.”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야무진 맛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박영훈의 단짝 친구인 최철한만은 이 수를 두둔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수가 박영훈류일 것이다. 허술해 보이지만 상대방으로서는 의외로 거북하다. 섣불리 뛰어들면 공격만 당하게 되고 방치하면 큰 모양을 줄 염려가 있다.” 백18로 접근한 수는 흑17의 허술함을 추궁한 것이지만 박영훈의 허허실실 전법에 말려든 감이 있는 수. 흑19로 첫 접전이 벌어졌다. 백22는 선배의 권도를 보이겠다는 착점인데 박영훈은 23으로 가장 강경하게 대응했고 여기서부터 험악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백22는 참고도의 백1이 보통. 박영훈은 흑6까지를 예측했다고 한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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