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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직위 낮추기

평소 가까이 지내는 화장품회사 사장은 근래「기획실장」이라는 명함을 하나더 만들어 가지고 다닌다. IMF사태후 회장품판매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선 영업점포들을 자주 찾아다니게 되는데 이때 기획실장 명함을 내놓고 상담하는 것이 자유롭고 편하다는 설명이었다. 일선점포에서도 사장이라는 그럴듯한 명함을 내놓던 점포주인이 영업부장이라고 자기를 낮추어 손님을 맞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띈다고 전한다. 서로 자기를 낮춘 사람들끼리 만나면 얘기도 쉽고 한층 친근감을 갖게 된다고 했다. 직위가 낮을수록 어떤 체면이나 특별한 격식 없이 홀가분하게 운신(運身)의 폭이 넓어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누구나 자기를 높이기에 바빴다. 웬만하면 사장, 회장이고, 교회목사님들의 경우도 당회장(堂會長)이라는 명함이라야 행세한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 기업체의 직급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경영주들은 그럴듯한 자기 직함과 승진을 열망하는 사원들에게 일본회사의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새로운 직급을 늘려갔다. 대리-과장대우(또는 직무대리)-과장-차장-부장대우-부장-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수석부사장-사장-부회장-회장, 그리고 일부 재벌그룹에서는 한 회사에 여러명의 사장을 담당별로 두고 있다. 회사가 커가고 사람이 모자라는 성장기에는 조직을 키울 수도 있어 별문제가 없었으나, 사람이 꽉 차가고 조직을 축소해가는 과정에서 극심한 인사적체현상이 벌어졌다. 승진경쟁이 치열해지고 승진연한이 늘어만 가는 인사적체는 어디를 가나 조직이 있는 곳은 심각하다. 대기업의 각 직급별 승진연한도 보통 4~5년으로 늘어났다. 연공서열(年功序列)도 무너져 연한이 차면 자동적으로 승진되는 법도 없다. 대졸사원이 이사(理事)가 되려면 빨라야 20년이다. 이사에서 사장까지는 가히 바늘구멍이라 할 수 있다. 요즘같이 사람이 남아도는 때는 인사적체에 감원바람까지 불어 정신차릴 겨를이 없다는 월급쟁이들의 한탄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대기업들이 연구해낸 것이 팀제(Team制)운영과 대부(大部) 대과(大課)제도이다. 팀제는 외국회사 운영방식을 받아들여 직위가 낮더라도 유능한 사람을 팀장으로 하여 직위높은 사람도 지휘할 수 있게 한 것이고, 대부 대과는 기존의 조직을 키워 직위 높은 사람들을 포용케한 것이다. 어느 것이나 사람·조직을 줄이고 인사적체를 해소하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언젠가 일본의 어떤 종합상사는 전체 사원의 직위를 일률적으로 한 급씩 내린 일도 있었다. 이것도 자동차 10부제 같아서 시일이 지나면‘도로아미타불’이다. 더 높은 직위를 좇던 시대에서 실질적으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편한 시대로 바뀌는 것 같다. 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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