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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염영일 생명공학연구원 부원장

피로물질 젖산이 암세포 성장 촉진 첫 규명

젖산 및 NDRG3 작용 흐름도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부원장·맨 왼쪽)이 4일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내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의 실험 내용을 듣고 조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생명공학연구원

평소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거나 무리해서 몸을 움직이면 다음날 온몸이 쑤시는 듯한 근육통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이 근육통을 유발하는 것이 젖산(lactate)이다. 젖산은 세포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근육 세포 안에서 분해될 때 만들어지는 피로물질이다. 그런데 젖산은 인체조직 내 산소가 부족한 저산소, 즉 정맥혈중 산소농도가 6% 이하인 상태에서 포도당이 불완전 연소하면 그 부산물로 생성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저산소 상태는 세포증식이 활발한 세포, 특히 암세포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암을 앓는 환자가 전신에 고통을 호소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젖산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1월 수상자인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부원장)은 이 젖산과 암세포 성장의 상관관계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냈다. 암세포에 의한 젖산 생성이 암의 악성화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연구는 많았지만 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혀낸 것은 염 부원장이 처음이다.

염 부원장이 찾아낸 젖산의 존재는 암세포 성장을 촉발시키는 신호물질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젖산 신호의 수용체이자 발암성 유전자인 NDRG3 단백질이다. 염 부원장은 "정상 산소 조건에서 NDRG3는 산소에 의해 분해된 뒤 유비퀴틴(ubiquitin)이라는 물질과 결합함으로써 분해돼 없어지지만 저산소 상태에서는 다량 생성된 젖산이 NDRG3와 결합해 유비퀴틴과의 결합을 막는다"며 "분해되지 않은 NDRG3가 세포 내에 축적되고 이는 세포성장 신호를 활성화해 결국 NDRG3가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염 부원장은 위암이나 폐암, 대장암 같은 여러 종류의 암세포가 NDRG3에 의존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하지만 젖산 인자를 배제하자 이들 암세포의 성장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염 부원장은 "이 같은 결과는 젖산 생성을 생화학이나 약물학·유전학적인 방법으로 조절했을 때에도 일관되게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염 부원장이 젖산의 기능을 발견하기 전까지 저산소 상태의 대표적인 조절인자로 알려진 것은 HIF(Hypoxia Inducible Factor)였다. HIF는 산소가 부족한 인체조직에서 생기는 세포생리학적 반응을 수행하는 다양한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한다. 그런데 조직이 저산소 상태에 돌입하면 HIF는 4~6시간 내에 발생하는 반면 젖산은 생성됐던 HIF가 점점 소멸될 때쯤 쌓이기 시작한다. 염 부원장은 "지난 20년 동안 (저산소 조절인자를 찾으려는) 연구에서 HIF만 계속 발견됐던 이유"라며 "하지만 HIF를 통한 암 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다른 인자는 없나'하고 연구에 매진했고 8년의 연구 끝에 결국 젖산 세포신호전달체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염 부원장은 이번 연구결과가 특히 고형암(위나 대장 등의 고형 인체 장기에서 발생한 악성종양) 치료에 효과가 클 것이라고 자신했다. 염 부원장은 "혈액 속에 떠다니는 혈액암은 저산소 현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고형암은 다른 신체 조직과 체계가 구성돼야 비로소 성장하는 형태"라며 "앞서 발견된 HIF 조절에 젖산 조절을 통한 암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고형암 완치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젖산 조절은 암 외에도 염증성 질환과 동맥경화 같은 심혈관 질환, 뇌경색 등의 허혈성 질환·고산병 등 저산소 현상과 관련된 다양한 질병의 치료 연구에도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염 부원장은 "이밖에 나이가 들면서 함께 근육이 약해지는 근육노화를 비롯해 만성폐쇄성 폐질환 같은 젖산균 만성감염과 관련된 질환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젖산 조절 물질을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 약효와 독성은 어떤지를 더 면밀하게 연구해 실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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