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보조금 지원 분쟁 때 WTO 결국 한국 손 들어줬지만
100억대 소송비 등 적잖은 타격… '상처뿐인 승리' 될 수도 있어
타업종 '반강제 빅딜' 반기류 땐 세제·금융지원 여의치 않을 수도
"솔직히(frankly), 한국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한 것 아니냐."(독일 대표)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전문위원회(WP6)의 집중포화 대상은 한국이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은 지난달 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우리 측은 "국책은행이 지원한 것일 뿐 정부와는 관계가 없다"며 일관되게 반박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지원 논란은 이 회의에서 마무리되지 않고 다음 회의(내년 6월)로 넘겨지면서 한국은 대응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돌아왔다.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번 EU와 일본의 문제 제기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한국은 물론 세계 조선업계를 이끌고 있는 '빅3'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신흥 조선 강국인 중국이 OECD 미가입국이라는 이유로 제외돼 반쪽짜리 회의체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WP6가 마땅한 이슈거리를 찾던 중 대우조선이라는 먹잇감을 잡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나 조선업계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대우조선 지원책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했다는 점에서 큰 위협으로 보고 있지 않다. 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아주 초기 단계의 항의 정도로 다음 회의 때 잘 대응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소로 이어질 경우 승패를 떠나 한국 정부와 국책은행·조선업계가 적잖은 비용과 수고를 치러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실제 지난 2002년 10월 EU는 한국이 수출입은행을 통한 선박금융과 선수금 환급 보조, 부채탕감을 통한 구조조정 등의 방식으로 WTO 협정에 위배되는 보조금을 조선산업에 지원했다며 WTO에 제소했다. 이후 2004년 말 WTO가 '정부 보조금이 아니다'는 취지로 한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국과 EU 간 조선분쟁이 마무리됐다. 국책은행에서 개별 조선기업에 지원한 자금은 정부가 직접 지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국책은행인 산은과 수은이 주도적으로 자금 지원에 나선 만큼 과거 분쟁과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변호사 선임 등 소송 비용으로만 1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며 "수많은 인력이 대응반에 투입되는 등 비용 외적인 손해도 컸기 때문에 상처뿐인 승리였다"고 회고했다. 비슷한 시기 SK하이닉스(옛 하이닉스반도체)도 정부 보조금 논란이 제소로 이어지며 미국 등이 관세를 물리려 하는 등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이번 문제 제기는 앞으로 진행될 조선산업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STX조선해양이나 성동조선해양·SPP조선 등 국내 조선업체 대부분은 국책은행이나 정부 관련 기관의 자금이 투입돼 대우조선해양과 마찬가지의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산업에 대한 지원이 국가 간 마찰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온 만큼 정부와 국책은행의 활동이 보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세제와 금융지원 등의 당근책을 갖고 추진하는 여타 업종의 '반강제적 빅딜' 작업도 국제적 반기류가 형성될 경우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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