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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일본 도쿄 팔레스호텔에서는 세계적인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 컨퍼런스인 IPBC AISA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모인 특허 관계자들은 각국 특허 현황과 우수 특허 보유 정보 등을 교류하느라 분주했다. 구글과 에릭슨, 노키아, 필립스 등 글로벌 정보기술(IT)·제조기업은 물론 인텔렉추얼 벤처스, 트랜스퍼시픽 등 글로벌 NPE(Non Practicing Entities)까지 참석했다. 특히 스마트카, 웨어러블, 차세대 비디오 코덱 등 향후 트렌드를 이끌 특허를 사전에 매입하는 한편 수익 다양한 차원에서 자사의 특허를 팔려는 글로벌 제조기업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국내 대표 IP투자 전문회사인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ID)가 해외 IP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설립 이후 특허 매입과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한 특허 자문 등에 주력해왔던 ID가 본격적인 수익 창출과 국내 기업들의 원활한 글로벌 진출 지원을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 특히 최근 들어 화웨이, 샤오미 등 중화권 제조기업들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특허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추세에 발맞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실제로 이번 IPBC 행사에서는 특허 거래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초 참석 인원은 350명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550명에 달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주요 발표 세션 역시 각국 특허 트렌드와 전망 등을 배우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다. 애플의 제조기지로 잘 알려진 팍스콘의 특허거래 전문 자회사인 MIICS 파트너스의 한 관계자는 "중국 제조사들은 주로 뮤추얼 펀드 구성을 통해 특허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자회사를 별도로 운영할 정도로 특허 매입과 관련한 네트워크 구축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ID 역시 이 같은 흐름을 감안해 해외시장의 문을 부지런히 두드리고 있다. 그 결과 특허 변방국으로 분류됐던 한국이 어느새 주요 플레이어 중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세계 NPE와 견줘 봤을 때 ID처럼 4,000건 이상의 국내외 특허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특허 거래 속성상 한두 번의 만남으로 계약이 성사되긴 어렵지만 평소 교류해왔던 글로벌 파트너들과 직접 만나 수시로 교류하며 관계를 구축한 것이 질 좋은 유망한 특허 매입과 라이센싱 협약을 통한 수익 창출의 밑거름이라는 것. 실제로 특허 매각은 최소 1~2년, 특허 소송 등을 통한 라이센싱 거래 체결에는 최소 수년 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ID의 이 같은 활동은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ID가 유망 특허를 사전에 취득해 놓은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들은 특허 분쟁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ID가 특허 계약 시 국내 기업에 대한 특허 공격은 안한다는 전제 조항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ID는 앞으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3국간의 가교 역할을 해나갈 계획이다. 김광준 ID 대표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특허 매입에 나서기 보다는 산업 보호에 초점을 둔 경영을 펼치지만 중화권 기업들은 레노바의 에릭슨 스마트폰 특허 구입 사례에서 보듯이 특허 매입에 상당히 적극적"이라며 "최근 들어 자사 특허를 시장에 적극적으로 내놓는 일본 제조기업의 특허가 중국으로 넘어가면 가격이 2배 이상 뛰는 만큼 한국이 관련 거래 중개로 적지 않은 이익을 앞으로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특허전쟁 시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사회적 환경 조성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NPE의 가장 큰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강한 특허를 많이 보유했는지에 달렸는데 한국은 아직 세계 무대에서 통할 만한 이른바 '핵특허'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단계부터 NPE 등이 적극 참여해 경쟁력 있는 특허를 사전에 만드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대표는 "미국에 비해 국내 특허출원 비용이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기업들은 특허를 단순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초기에 과감하게 투자할 경우 경쟁력 있는 특허로 탄생하는 만큼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바라보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도쿄=박진용기자 yong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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