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이 단기 성과에만 매달리다 '교각살우(矯角殺牛)'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4월 총선 이전까지 기업 구조조정을 마쳐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해 짧은 시한을 정해놓고 기업을 묶거나 파는 계획을 세우다 보니 시장 상황은 뒷전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채권단에 맡겼다가 성과가 나지 않자 직접 칼을 잡은 것까지는 좋은데 앞뒤 가리지 않고 속도전을 벌이다 보니 벌써 잡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실기업을 단기간에 처리하는 성과에만 몰두하기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가 91개 기업 지분을 3년 안에 팔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성과주의에 집착한 전형적인 결과다. 금융위는 매각 추진 결과를 성과 평가에 넣겠다며 '채찍질'도 가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90여개 기업 지분을, 그것도 3년 이내라는 시한을 정해 팔겠다고 외부에 알리는 일부터 아마추어 같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정책금융기관 내부 관계자는 "3년 내 집중 매각은 금융위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구조조정이 끝난 기업이라고 바로 시장에서 수요가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국내에 매몰되지 말고 시야를 세계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980년대 산업 합리화 시절과 외환위기 때는 국내 과잉생산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중국의 과잉생산이 문제"라며 "매물이 나와도 중국 매물에 가려버릴 것"이라고 전했다. 2~3년 뒤 중국 기업 매물이 쏟아질 텐데 누가 비싸게 한국 기업을 사겠느냐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연합자산관리회사(유암코)를 확대해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사모펀드를 구성해 민간 참여자를 모으면 재원조달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은행들의 약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얼마나 내놓을지,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할지는 아직 논의조차 않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의 가이드가 나와야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계약은 은행이 하는데 결정권은 여전히 금융당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번 구조조정은 1980년대 산업 합리화 정책과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세 번째다. 그러나 벌써부터 시간에 쫓겨 구조조정이 기본원칙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실기업을 만든 책임을 따지지 않은 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구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노조에 자구책을 요구했지만 산은 등 대주주나 금융위·정치권 등 대우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한 주체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구조조정은 대주주·노조·채권단이 모두 만나 책임을 규명하고 손실을 부담한다는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구조조정 이후 새판짜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개별 기업이 할 수 없는 신성장동력을 찾는 일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부마다 신성장동력을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이르기까지 수십조원을 투자하고도 가시적인 성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현 정부의 산업정책은 작은 것에 매몰돼 산업 차원의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각 부처별로 흩어진 지원을 한데 모아 제대로 된 상시 협의체를 만들고 이곳에서 총괄해 자원을 배분하고 구조조정의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원·조민규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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