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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의 한 허름한 국숫집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잔치국수 곱빼기도 3,000원에 파는 서민 맛집으로 유명한 이곳이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에 수백명이 몰려 하루 종일 긴 줄이 줄어들 줄 몰랐다. 오후5시30분께 크림슨 색 점퍼를 입은 탄탄한 체구의 한 중년남성도 부인과 팔짱을 끼고 줄 맨 뒤쪽에 섰다. 가끔 발을 구르며 이른 추위를 날리던 그는 가게 양옆을 유심히 살피다 눈대중으로 손님 수를 헤아리기도 하면서 부인과 담소를 나눴다.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노상 한쪽 끝 동그란 작은 의자에 부인과 자리를 잡은 사람은 유경선(60·사진 왼쪽) 유진그룹 회장. 유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가게 주변을 180도 돌아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물론 잔치국숫집 메뉴판까지 꼼꼼히 찍다 갑작스럽게 기자를 마주친 유 회장은 잠시 당황스러워하다 이내 "소문 듣고 처음 왔는데 정말 사람 많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사모님과) 데이트 나오셨느냐"는 물음에 "가끔 함께 나오는데 오늘은 직원 교육자료를 만들러 왔다"며 "참 배울 점이 많은 음식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레미콘 업체인 유진기업을 필두로 유진투자증권·유진자산운용 등을 이끌고 있는 유 회장은 최근 국내 최대 시멘트 기업인 쌍용양회 인수전에 뛰어드는 한편 유진기업을 통해 옛 동양그룹 지주사인 ㈜동양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그는 동양 인수계획 등 경영 현안을 묻자 "오늘은 재밌게 국수 먹으러 왔는데…"라며 양해를 구하고는 막 나온 푸짐한 잔치국수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10분도 안돼 양은그릇에 담긴 잔치국수를 비운 유 회장이 먼저 일어섰다. 그는 "국수가 정말 맛있네. 일은 다음에 하자"고 기자에게 당부하며 저 멀리 주차해둔 차를 찾으러 걸음을 옮겼고 뒤늦게 식사를 마친 부인(오른쪽)이 국숫값 6,000원에 작은 사례를 올려 계산을 했다. /손철기자 runir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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