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들이 잇단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채권단 관리 아래 있는 STX조선의 최고경영자(CEO)가 "연말 위기에 봉착해 내년 초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고강도 경고 메시지를 꺼내 파장이 일고 있다. 올 하반기 성동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이 채권단의 긴급 자금 수혈로 기사회생한 데 이어 이번에는 STX조선해양에 당장 수천억원대의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달 말 채권단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STX조선은 대규모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 선제 자구 노력을 통해 어떻게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피하겠다는 방침이다. STX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제공하기로 한 만큼 STX조선까지 지원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고강도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번 더 기회를 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5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이병모(사진) STX조선 사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특단의 대책 없이 이대로 회사를 운영할 경우 앞으로 3년간 수천억원의 자금이 부족하다"며 "올해 말 위기에 봉착해 2016년 상반기 내에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STX조선이 지난 2013년 채권단으로부터 지원 받은 4조5,000억원을 모두 소진했지만 여전히 흑자를 내지 못해 올해 말 심각한 자금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STX조선해양은 2013년 7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가면서 운영자금 3조6,800억원과 손해배상비용 4,600억원, STX다롄 지급보증 3,600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2013년 이전 저가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손해가 커졌고 생산성 저하로 공정이 지연돼 선주사에 내는 벌금까지 불어났다. 결국 지난해와 올 상반기까지 영업손실이 각각 3,137억원, 265억원에 이르며 적자를 면치 못했다. 특히 내년에는 수백억원대의 손실이 예상되는 배들의 건조가 시작되고 최근 신규 수주 부진으로 선수금 유입까지 줄어 STX조선은 다시 채권단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이달 말 STX조선에 대한 실사 결과를 발표하는 산은은 기대했던 경영 정상화는커녕 외려 2년 만에 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오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과감히 자금줄을 끊고 법정관리로 가자니 앞서 지원한 4조5,000억원이 묻히는데다 선주들의 선수금 반환 요청도 우려돼서다.
이에 STX조선해양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의지를 채권단에 보여주고 자금 지원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매도 먼저 맞는다'는 식으로 한발 일찍 움직여야 인적 구조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절박함도 담겼다.
이 사장은 구조조정 핵심과제로 △과업 중심 조직개편 △작업능률 향상 △임금삭감·인력감축 △신속한 자산 매각 등을 꼽았다. 조직개편은 유사 업무·직무를 통폐합하고 조직 단계를 축소·단순화는 식으로 이뤄진다. 경쟁력 없는 사내 업무는 외주화하고 일부 사내외 협력사는 정리한다. 임금은 10%가량 삭감될 것으로 예상되며 생산직을 포함한 대규모 인력을 감축한다. 앞서 이 사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내년 생산능력을 올해의 75% 수준으로 줄일 것"이라며 설비·인력을 줄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STX조선은 또 강점을 지닌 LR1탱커 등 중형 유조선으로 제품을 단순화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해양플랜트와 군함 등 특수선 사업에서 아예 손을 떼는 방안을 비중 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장은 2018년 이후에는 자금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내다보며 "자구 노력을 실행한다면 타사 대비 확실한 우위 요소를 갖춘 경쟁력 있는 조선소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이 선제 구조조정 계획을 알린 것에 대해 채권단이 STX조선에 추가 자금을 지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사 결과에 대해 이 사장과 산은 간 충분한 논의와 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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