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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가구인 30대 직장인 신진호 씨는 평일 저녁 식사를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 지난해부터 편의점들이 도시락과 식사류, 라면류 등 브랜드 고유의 먹거리를 대폭 보강해 여러 편의점을 돌며 골라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최근에는 안주거리를 넘어 과자 등 간식류도 편의점에서 해결한다. 팝콘이나 초코콘처럼 특정 브랜드가 아니면 구입할 수 없는 제품들이 많아 일부러 해당 편의점을 찾는다. SNS상에도 신씨처럼 편의점 과자, 편의점 라면, 편의점 도시락 시식기를 올리는 비교 체험기가 넘쳐난다. 신씨는 "'편의점 제품 순례'는 일본 여행에서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서로 다른 프리미엄 제품이 경쟁적으로 출시되며 국내에도 막 유행이 시작된 것 같다"며 "천편일률 적이었던 2~3년 전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매장 귀퉁이에서 구색용에 불과했던 편의점 자체브랜드(PB) 제품이 브랜드 고급화 경쟁과 함께 편의점 전체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대표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나아가 편의점들이 선보이는 독특한 PB 제품이 마니아 층을 양산하고 해당 편의점을 방문하는 주된 이유가 될 정도로 업체마다 차별화를 내건 PB의 무한변신이 눈부시다.
편의점 업계는 올해 어느 해보다 뛰어난 품질과 혁신으로 무장한 '프리미엄 PB'를 앞다퉈 선보였다. 아침 간편식은 물론 프리미엄 라면, 고급 디저트 등처럼 한발 앞서 트렌드를 읽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 제품들을 속속 쏟아냈다. PB 매출도 쑥쑥 올랐다. CU의 경우 2013년과 2014년엔 각각 7.6%, 9.1% 증가에 그쳤지만 올 1~3분기에는 평균 28.2%나 급증했다. 편의점 PB가 무한진화를 거듭하게 된 것은 점차 성숙시장으로 변하는 환경에서 브랜드 차별화를 이뤄내고 트렌드를 신속하게 반영하는데 PB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PB사업 초창기엔 저가 상품용도로 개발됐다면 이제는 편의점의 정체성과 차별화 차원에서 심도있게 검토된다.
이런 노력으로 올해엔 유명 제조업체 상품을 뛰어넘는 상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라면 분야에서는 27년 편의점 역사 이래 줄곧 1위를 차지한 제조업체의 봉지면과 용기면을 모두 제치고 편의점 PB들이 1위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지난해말부터 고급 PB라면을 속속 출시한 점이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짚었다는 평가다. 대용량 야쿠르트, 고급 빙수처럼 제조업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 제품들도 호평받으며 1위 자리에 올랐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편의점 'PB 팝콘'들이 유명 스낵을 밀어내며 새로운 스낵 카테고리를 조성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 제품을 대형 제조업체가 아닌 중소업체와 손잡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상생을 구현하는데도 앞장섰다는 평가를 듣는다.
PB 시장이 커지면서 업체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CU는 올 들어 1인 가구의 아침을 겨냥한 식사 대용식 PB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집에서 아침을 먹지 않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고 판단, 올들어 주먹밥, 토스트, 베이글, 커피 등 프리미엄급의 식사 대용식 PB를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프리미엄 주먹밥 '밥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프리미엄 주먹밥 매출이 전체 CU 김밥·주먹밥 등 간편식 매출의 32%까지 늘며 일 년 만에 배증했다. 또 일반 제품보다 용량은 늘리고 가격은 내린 '자이언트 피자', '저지방우유' 등은 제조사 제품들을 제치고 히트 상품으로 우뚝 섰다. 1인 가구를 겨냥해 업계 최초로 출시한 1ℓ생수도 전체 생수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다.
GS25는 한 발 앞선 '혁신 PB'로 아이스크림, 야쿠르트, 라면 분야에서 유명 제조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말 한국야쿠르트와 함께 출시한 'GS 야쿠르트 그랜드'는 높은 호응 속에 탄산, 이온, 과즙, 커피, 생수 등 모든 음료를 제치고 단숨에 음료 부문 매출 1위로 떠올랐다. 이 제품은 한국야쿠르트의 기존 제품과 모양을 똑같이 재현하되 사이즈만 280㎖로 대폭 늘린 것. 간단한 아이디어였지만 SNS 등지에서 '내가 찾던 바로 그 제품'이라는 입소문을 타며 올해 대표 히트상품이 됐다. 지난해말 출시된 '오모리김치찌개 라면(용기면)'은 라면 업계의 절대 강자인 농심 '신라면' 봉지면마저 처음으로 제치고 출시 이후부터 줄곧 라면 부문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세븐일레븐도 먹거리 및 간식의 프리미엄화로 1위 제품을 양산했다. 지난 3월 걸그룹 걸스데이의 혜리를 모델로 한 '혜리 도시락'은 기존 1위 도시락보다 7배 이상이 팔리며 단숨에 1위 자리를 갈아치웠다. 전체 도시락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두 배 늘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주로 남성들이 찾는다는 데 착안, 반찬 수와 양을 늘리고 고기류 반찬을 강화한 점이 주효했다. 또 지난해 10월 강원도 강릉교동반점과 협업해 출시한 'PB교동반점짬뽕(용기면)'도 기존 용기면 1위인 삼양불닭볶음면을 제치고 매출 1위로 올라섰다.
미니스톱도 전문점 못지 않은 고품질 즉석 PB 제품을 앞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 PB인 '소프트크림'은 우유 함량이 50% 이상으로 높아 부드럽고 진한 아이스크림으로 시간이 지나도 눅눅해지지 않는 와플콘을 사용해 히트 상품이 됐다. 특히 계절마다 종류를 바꾸는 전략으로 매해 10% 이상 매출도 늘고 있다. 닭다리 부위를 특화한 '조각치킨'도 지속적인 제품 업그레이드와 조각 당 1,800~1,900원의 합리적 가격으로 전체 판매 순위 10위권에 든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PB시장이 갈수록 성장하면서 업체들도 PB 비중을 현재의 35% 선에서 일본처럼 50% 이상 대폭 늘리게 될 것"이라며 "결국 다른 유통업종처럼 편의점도 '유통+제조업체'로 변모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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