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계는 공식적으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국회 비준이 우여곡절 끝에 합의된 데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1조원에 달하는 농어촌 지원 기금을 '준조세' 형식으로 기업들에 떠넘기는 정치권의 행태에 속으로 불만이 크다. 외형적으로는 '자발적'인 기금 출연이지만 실제 청년희망펀드, 평창올림픽 후원 등 사례와 같이 결국 기업에 반강제적으로 할당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FTA민간대책위원회는 30일 "최근의 수출부진 극복과 우리 경제의 활력 제고에 한중 FTA가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며 "여야정 협의체가 한중 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FTA민대위는 경제4단체(무역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와 은행연합회 등 업종별 단체, 연구기관 등 총 42개 단체로 구성된 FTA 관련 민간을 아우르는 기구다. 특히 그동안 논란이 됐던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이 무산된 점은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FTA민대위는 "무역이득공유제 대안으로 민간기업, 공기업, 농·수협 등의 자발적 기부금을 재원으로 하는 기금 조성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중소·중견업계도 전반적으로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정부의 후속 대책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는 "생활용품 만드는 중소기업은 값싼 중국 제품 수입으로 피해가 우려된다"며 "정부의 피해 보전 정책과 더불어 업계는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그러나 정치권이 농어촌의 표심을 의식해 결국 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데 대해 속으로는 불만이 크다.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농어총 지원 기금을 '자발적'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반강제적인 '준조세'가 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들어 대기업을 대상으로 명목상으로만 자발적인 준조세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전국에 세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15개 기업이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최근에는 청년희망펀드도 대기업들이 총 1,000억원이 넘는 돈을 갹출했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도 기업들을 상대로 수천억원대의 모금을 진행 중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예산을 통해 피해 농어민을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FTA 수혜를 전제로 불특정 기업에 상생기금을 출연하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에는 묻지도 않고 정치권이 합의를 통해 기업에서 돈을 걷으면 기업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불우이웃 돕기나 청년희망펀드와는 달리 FTA의 경우 기업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점도 문제다. 내수기업은 내수기업대로 불만이고 수출기업 역시 한중 FTA로 늘어난 이익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돈을 내라는 데 선뜻 수긍하기 힘들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중 FTA 협상 과정에서 국내 제조업체들의 경우 석유화학, 조선, 철강,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품목에서 국내 농산물 보호 때문에 중국의 개방을 얻어내지 못한 게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기부금을 내라고 하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혜진·한동훈기자 hasim@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