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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은 최근 홍콩에서 치러진 전동차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홍콩지하철공사가 발주한 전동차를 수주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중국중차(CRRC)에 밀렸다. 앞서 CRRC보다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하고도 홍콩지하철공사의 물량을 따낸 경험이 있었던 현대로템은 이번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홍콩지하철공사는 영국의 안전기준을 적용해 가격보다 품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CRRC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입은 CRRC와의 경쟁에서 패배는 예정된 사실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제조산업을 대표하는 현대로템이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좀처럼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하철 전동차 내구연한이 폐지되면서 교체수요가 줄어들고 해외에서는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업체에 밀려 수주에 애로를 겪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차량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로템 같은 국내 철도차량 제조사의 강력한 라이벌인 CRRC가 경쟁력을 자랑하는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CRRC는 중국 정부가 기존의 국영 철도업체들을 합병해 탄생시킨 매출 42조원 규모의 초대형 철도차량 제조사다. 중국 정부는 CRRC가 해외 사업을 진행할 때 1%대의 초저금리로 정책금융을 지원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시 주석이 지난해 9월 인도를 방문해 현지 고속철 사업에 20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CRRC는 정부와 함께 해외 각지에서 잇따라 사업을 수주하며 기술력 역시 빠르게 쌓아가고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철도사업의 특성상 한번 사업을 따내면 추가 물량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며 "CRRC가 보통 2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면서 도저히 이기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철도차량 제조는 국가 기간산업이어서 중국뿐 아니라 프랑스·캐나다 등 각국 정부는 알스톰과 봄바르디어 같은 자국 업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산화 비율 30%(서울메트로 2호선) 조항 정도가 유일한 지원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00억원 규모에 불과한 내수시장이지만 그마저도 사정이 좋지 않다. 정부가 지난해 초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전동차 내구연한(25년)을 폐지하며 새 전동차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코레일과 서울메트로 등 지하철 운영사들이 노후 전동차 교체를 늦추면서 철도차량 제조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민관 협력과 대조적인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국내 철도차량 제조사들의 경영상황도 악화일로다. 2013년 1,744억원이었던 현대로템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66억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 상반기 13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신규 수주량은 지난해 전체 수주량의 11.8%인 4,841억원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면서 "노후 전동차 교체비용을 지원하는 등 내수시장을 키우고 해외에서의 수주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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