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면서 배우자와 함께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김모씨는 지난해 은행에서 1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10년 만기로 받았다. 당시 김씨는 은행에 별도의 소득증빙자료를 내지 않고도 대출심사를 통과했다. 해당 은행이 4인 가구 최저 생계비(연 2,000만원 정도) 자료를 활용해 김씨의 대출한도를 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김씨 사례와 같은 '쉬운' 대출이 은행권에서 사라지게 된다. 최근 금리 하락기 동안 급증한 가계대출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여신심사를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4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상환능력 집중평가를 핵심으로 내놓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은 지난 7월 금융당국이 내놓았던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의 후속대책이다.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국내 경제 전반에 대한 파급력이 큰 미국의 금리 인상, 기업 구조조정 등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선제적인 부채관리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 들어서도 9월까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과 가계신용대출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6%, 10.4% 늘면서 전체 가계부채 규모가 1,166조원을 돌파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선 금융당국과 은행은 내년 2월 수도권을 시작으로 5월부터는 전국에서 공히 주택담보대출을 신규로 받으려면 원천징수영수증이나 소득금액증명원 등 소득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소득증빙이 여의치 않으면 국민연금·건강보험료 등을 납부한 내역이나 신용·체크카드 사용 매출액, 임대소득 등 신고소득자료라도 대신 내도록 해 상환능력을 먼저 입증하라는 의미다.
과거 만기 도래 시 주택 가격 상승분으로 원금을 일시 상환하도록 허용했던 관행도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주택 시장이 안정된 성숙 단계에 접어든 만큼 시세차익을 노린 거치식 상환의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규 주택담보대출이 신규 주택 구입용 대출이거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60% 초과(DTI 30% 미만 제외) 대출, 주택담보대출 담보물건이 해당 건 포함 3건 이상인 경우, 소득산정 시 신고소득을 적용한 대출 등은 비거치식·분할상환으로 취급하기로 했다. 다만 기존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은행이 안내를 통해 비거치식 분할상환으로 유도하고 상속·채권 보전을 위한 경매 참가 등 불가피한 채무 인수, 명확한 상환계획이 있는 경우, 불가피한 생활자금 등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집단대출 역시 예외사항으로 분류됐다. 이번 여신심사 강화로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더불어 은행권은 차주의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요소에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기타 부채도 꼼꼼히 따지기로 했다. 그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과 기타 부채 이자 상환액만으로 상환 부담액을 산출했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에 기타 부채 원리금 상환액까지 평가하는 DSR 지표를 도입할 계획이다. 당장 대출 규모에 제한을 두지는 않겠지만 주의 대상으로 집중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면한 대내외 리스크 요인을 감안하면 부채의 질적 구조개선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며 "냉온탕식 직접 규제보다는 빚은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처음부터 나눠 갚는' 원칙하에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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