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 악화에 시달린 정유 업계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와 두바이유 가격이 4년 만에 역전되면서 우리나라 정유업계에 원가경쟁력을 강화해주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조심스럽게나마 올해 정유업계 실적이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WTI 가격이 두바이유 가격을 웃도는 추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의 가격 추이를 감안하면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비싼 것은 상식에 속했지만, 최근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오른 것은 2011년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WTI와 두바이유 가격의 '역전'을 불러온 것은 셰일가스다. 최근 수 년간 WTI 가격은 북미의 셰일가스 생산량 급증으로 인해 저공행진을 계속했다.
하지만 중동 국가들이 셰일가스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두바이유 생산량을 꾸준히 늘렸고, 지난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40달러대까지 꺾이자 마침내 북미의 중소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다시 셰일가스 생산량이 줄면서 다시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비싸진 것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 셰일가스 생산 감소와 중동 국가들의 증산이 계속되면서 WTI 가격은 두바이유보다 비싼 가격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이는 전체 원유 수입량 중 두바이유의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국내 정유업계에도 희소식이다. WTI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두바이유를 들여와 가격경쟁력 갖춘 석유제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처럼 가파른 유가 하락세가 계속된다면 이 같은 현상을 반길 수 없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완만한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유사의 수익성을 결정짓는 정제마진이 회복세라는 점까지 맞아떨어졌다. 페트로넷 등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7월 배럴당 5.6달러까지 내려갔지만, 9월부터 다시 9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배럴당 11.8달러까지 올라간 상태다.
통상 정제마진이 5달러대 이하면 정유사들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으로 본다. 정제마진이 다시 오른 이유에 대해선 '수요 증가'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조심스레 "올해 실적이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국내 정유업계의 올해 누적 실적은 예년 평균을 넘어선 상태다. 지난 3·4분기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의 매출 합계는 24조281억원, 영업이익은 3,377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전년보다 29.83%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내년에도 평균 정제마진이 배럴당 8.4달러로 강세를 보일 전망이며, 저유가로 전세계 정유업계의 증설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보탰다.
다만 자국 내 공급 과잉으로 정유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한 중국 등이 난관이다. 지난 2006년 90% 초반에 머물렀던 중국의 정유제품 자급률은 올해 100%를 넘어선 것으로 관측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원유 도입처 다변화 등 원가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각 업체별로 신사업 비중을 높여나가 후발주자의 추격으로 인한 타격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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