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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비진작 치어걸'로 활약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이 급감하자 그나마 정부가 손써볼 수 있는 내수시장을 띄우는 데 역량을 총동원한 것이다. 그러나 대증적 처방을 바라보는 경제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소비가 늘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뻔한 상태에서 단발적인 부양책을 이어갈 경우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호흡기를 단 환자에게 모르핀만 놔주는 격일 수 있다. 당장 연말에 개별소비세 인하가 종료되면 소비절벽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벌써 나오고 있다.
8일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과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경제단체 부회장과 함께 서울 양천구 목3동 시장을 방문했다. 주 차관은 "소비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전통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직격탄을 맞은 내수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난 8월부터 코리아 그랜드세일, 개별소비세 인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소비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줄줄이 내놨다. 때문에 소비 훈풍에 우리 경제가 여섯 분기 만에 1%대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그린북에서 "소비가 메르스 이전 수준을 웃돌면서 생산과 투자도 2분기 부진에서 점차 회복되고 있다"며 상당히 자신 있는 표현을 썼다.
특히 개소세 인하의 효과는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린북에 따르면 9월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5.5% 증가했다. 백화점 매출액도 14.1%가 늘어 지난 2012년 11월(18.7%)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해 9월 소매판매가 탄력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좀 다르다. 일단 최근 내수지표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자동차가 거의 유일해 보인다. 소매판매액이 △6월 -0.6% △7월 0.7% △8월 0.3% 등의 완만한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승용차를 제외한 소매판매액 증가율(전년 대비)은 △6월 -3.3% △7월 -0.6% △8월 -1.3% 등으로 여전히 부진하다. 자동차 때문에 전체 소비가 살아난다는 '착시현상'이 있을 수 있다. 9월 백화점 매출증가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액수로 보면 절대액은 정부 말대로 '놀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내수가 좋아졌다기보다는 메르스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계소득이 시원치 않은 상태에서 소비증가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자리걸음인 가계소득을 감안하면 9월 소비지표가 나아지고 있는 게 실상은 미래에 쓸 돈을 앞당겨 쓰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가계의 돈줄은 마르고 있다. 지난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계소득을 늘리겠다며 배당소득을 포함한 '가계소득 증대 세제 3대 패키지'를 마련했지만 체감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2·4분기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1.6%로 역대 최저였던 지난해 12월 (71.5%)과 비슷한 수준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성장률 기대가 0.1%포인트만 낮아져도 단기적으로 소비성향은 0.9%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재촉으로 앞당긴 소비 때문에 개소세 인하가 종료되는 연말 연초에 '소비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금이야 지표가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복 모멘텀이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더욱이 추경효과나 내수진작책이 사라진 내년 초에는 마땅히 쓸 만한 카드도 없어 (소비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결국 기업수익이 늘고 이에 따라 가계수입이 좋아져야 하는데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가계소득 확대는 어려워 보인다"며 "개소세 연장 같은 단발성 정책보다 좀 더 근본적이고 연속성 있는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연선·김상훈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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